The Goddess as Metaphoric Image 은유적 이미지로서의 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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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5-05-23 17:24 조회201회 댓글0건본문
The Goddess as Metaphoric Image
은유적 이미지로서의 여신
Nell Morton
대학에서 최초로 여성과 종교를 가르친 신학자이며, 오랫동안 평화, 인권, 여성해방운동에 전념해 온 활동가이다. 종교계의 많은 현세대 페미니스트들의 멘토인 그녀의 주요 페미니스트 이론서는 The Journey is Home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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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은유적인 이미지로 여신을 말할 때, 요정같이 생긴 대모가 기적처럼 나타나 호박을 마차로 바꾸는 요술처럼 "현실 밖에 있는" 어떤 존재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또한 마치 고대 종교를 부활시키려는 것처럼 '과거의 기록에서 존재하는' 여신을 언급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는 여자이기 때문에, 내 안의 여신을 본다. 그러나 나의 관심을 온전히 현재에 집중시키면서 동시에 나자신을 은유적 과정처럼 끌어들이기 위한 구체적인 이미지나 구체적인 사건이 필요하다. 내가 처음으로 여신을 경험했던 상황은 일종의 무의식적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개념적으로는 더 이상 신을 "밖에 있는“ 존재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신을 “남성”으로 정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신 이미지로서의 남성성은 여전히 내 안에서 살아 있었고, 내가 예상하지도 못한 뜻밖의 경우에도 작동하고 있었다.
1972년 Grailville1)에서 여성들이 신학을 연구하는 두 번째 전국회의가 열렸다. 어느 날 아침, 65명 정도의 여성 대표들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예배실 바닥에 반원형으로 편안하게 둘러앉았다. 은은한 조명, 앞쪽의 높은 제단, 넓은 공간 등, 아마 리더들이 여성들을 위해 전형적인 명상분위기로 잘 정돈해서 준비해 두었던 것 같다. 바닥 한쪽으로 쿠션들도 치워져 있었고, 공간은 신성한 것처럼 느껴졌다. 화면 앞쪽에 있는 남근 상징(역자주: 십자가)은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었다. 가림막 앞 낮은 테이블에 놓여있는 야생화 꽃다발은 편안함을 더했다. 여자들은 서로 마주보았다. 우리들 대부분은 처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뭔가 새롭고 색다른 일이 나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여성만의 공동체들에서 배려 받았던 경험보다 훨씬 더 엄청난 어떤 일이었다. 거의 마지막에 지도자가 "이제 그녀SHE는 새로운 창조물이다." 라고 말했을 때는 절정에 이르렀다. 그것은 내가 직접 들은 것도, 이성적으로 이해한 것도, 누군가에게서 전달받은 것도 아니었다.
모든 것이 하나로 합쳐진 것 같았고 나는 마치 배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마치 어떤 사람이 "당신은 이제 온전한 인간성에 도달합니다. 그동안 삭제되었던 것은 분명히 당신의 것이었고, 본질적으로도 당신으로 프로그래밍 되어 있었어요." 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 순간, 큰 날개2)를 가진 어떤 존재가, 앉아있는 우리 여성들 모두를 날개로 감싸 안으며 우리는 하나로 묶는 것처럼, 친밀하고도 무한한 초월적인 힘이 나를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 ‘만약에’ 라는 그 어떤 의심도, ‘그러나’라는 조건도 없었다. 나는 직접적이고 강력한 무언가를 감지할 수 있었다. 남성 사제, 남성 랍비, 남성 목사가 하는 남성의 언어를 듣고있는 것이 아니었다. 남성의 경험과 사고방식을 여성의 것으로 번역하거나 해석한 후에 나 자신에게 적용해야 할 필요도 없었다. 예배에 사용된 용어들도 오로지 여성들의 언어였다.
갑자기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배에 손을 얹고 입을 벌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오!" 라고 큰 소리로 말을 뱉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내가 바보 같은 행동을 한 것 같아 내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많은 여성들도 나처럼 반응하고 있는 듯했다. 리더가 잠시 멈췄다. 그러자 여자들 중 한 명이 주먹을 들어올리며 "예! 예!"라고 외쳤다. 모든 여자들이 그 소리를 따라 "예! 예! 예!"라고 외쳤다. 나는 처음으로 여신을 경험했다. 이전에는 여신을 단지 개념적으로는 알았고,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다. 또한 내가 가부장 신의 남성성을 얼마나 깊이 내면화했는지,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지구상에서의 남성 지배를 얼마나 열렬하게 지지했으며, 또한 나 자신의 여성 정체성을 훼손했다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되었다. 그 순간 세계 5대 가부장적 종교에서 여성에 대한 위대한 옹호자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지금까지 거의 10년 동안 일을 해왔지만, 여전히 미완성의,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여신에 대한 나의 두 번째 경험은 1976년에 있었다. 나는 이미 캘리포니아의 은퇴자 공동체로 이사한 후였다.3) 그해 8월, 세계 감리교 여성연맹에서 연설을 하기 위해 더블린으로 가는 도중에, 그래일빌Grailville에 들러 여성신학 연수프로그램(Seminary Quarter for Women)의 자원 강사로 참여했다.4) 신시내티공항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는데, 공항을 출발한 직후부터 하늘은 어두워졌고 극도로 난기류인 날씨를 만났다. 나는 평생 동안 고소공포증에 시달렸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날씨라도 비행기에서 편히 지낸 때가 없었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나 자신이 성숙한 사람이라는 믿음과는 달리 가장 비이성적인 상태가 되었는데, 아마도 어렸을 때 높은 곳에서의 충격적인 경험이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평소에 나는 두 손을 꼭 잡고 하늘에 계신 강력한 남성 신에게 보호를 요청했다. 내가 처음으로 무의식적으로 공포를 느꼈을 때, 내가 가지고 있던 신에 대한 믿음에 의지했음이 틀림없다; 공포심과 어린 시절의 신앙의 이미지가 동시에 떠올랐다. 이전에 나는 항상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비행기를 안전하게 지켜달라고 애원도 하고, 착한 사람이 될 것을 약속도 하고, 또 그동안의 나의 잘못을 고백하기도 했다. 항상 비행기에 탄 다른 사람들과 전 세계를 날고 있는 모든 비행기가 안전하기를 신에게 부탁했다. 그런 다음, 여정이 끝날 무렵에는 안전하게 도착했음에 대해 항상 감사 기도를 했다.
그런데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난기류를 느끼자, 나는 성숙하고 이지적인 나의 자아를 불러올 때라고 판단했다. 그때 문득 생각했다. ‘여신을 부르면 어떨까!’. 그런데 여신을 어떻게 불러야 하지? 그리고 어떤 여신을 불러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리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갑자기 누군가가 내 옆의 빈자리에 앉아 내 팔에 손을 얹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긴장하지 말아요." 그녀가 말했다. "모든 긴장을 풀어요. 몸이 좌석에 밀착되고 발이 바닥에서 무겁게 놓이는 것을 느껴보세요. 공기에도 바다처럼 파도가 있어요. 공기를 볼 수는 없지만, 만약 그 공기에 몸을 맡긴다면 난기류 속에서도 공기의 리듬을 느낄 수 있어요. 조종사는 전에도 여러번 이곳을 비행한 경험이 있어요.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요. 최악의 날씨에서도요. 그렇게 희미하게……. 이제……. 공기의 흐름, 평범한 기류를 느낄 수 있나요? 이제 숨을 쉬어 보세요, 깊이 숨을 쉬어 보세요. 파도를 타보세요. 스스로 리듬의 일부가 되어 보세요.” 나는 그녀가 가리켜 주는 대로 했다. 내 몸의 근육에서 두려움이 빠져나갔다. 정말로 나는 그 리듬을 느낄 수 있었다. 곧, 나는 그 비행을 놀이기구처럼 즐기고 있었다.
그 후, ‘어떻게 여신에게 감사할까?’ 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눈을 떴다. 그러나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녀는 떠나고 없었다. 그러자 나는 그녀가 나에게 보내준 것 같은 엄청난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 안의 에너지를 불러낸 것이다. 나는 두려음이 사라졌다. 그날 이후,나는 비행기를 두려워한 적이 없다. 내가 즉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여신은 스스로 해야 할 일을 내가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감사 인사를 받기 위해 머무르지도 않았다. 또 한 명의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힘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여신에게는 충분한 감사인 것 같다. 나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 어느 오후였다. 나는 거실의 커다란 안락의자에 앉아 무릎방석 위에 발을 올려놓고, 거리를 향해 열린 창문을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하루 종일 나를 괴롭히던 우울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긴장을 풀고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하기로 생각했다. 우울감의 바닥끝까지, 우울의 에너지를 내려놓고 적어도 왜 그것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나는 우울감을 따라 가기 시작했고 그것을 없애기 위해 무엇이든 직면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여신이 어떻게 비행기에서 나를 구하러 왔으며, 어떻게 다른 순간에서 나를 돌봐주었는지를 생각해냈다.
나를 내려놓고 그녀에게 내 마음을 열자, 여신은 내 앞에 있는 창문 왼쪽을 통해 갑자기 스치면서 나타났다. 그리고 내 의자에 다다랐을 때 멈춰 섰고, 옆으로 비켜서서 나의 어머니께 절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더니 사라졌다. 나의 어머니는 피의 강에 떠 있었다. 그녀 앞에 흐르는 피는 그녀가 일생동안 흘린 피인 것 같았고, 그 뒤에 있는 모든 피는 내가 흘린 피 같았다. 어머니는 곧장 내 의자에 와서 내 위로 몸을 굽히고 말하기 시작했다.
"넬, 나는 너의 아이들에게 큰 실수를 저질렀단다. 생리가 질병이라고 생각하도록 했어, 아니, 그렇게 가르쳤어. 너는 (집에서) 큰 언니이고 너의 두 여동생들보다 더 많은 고통을 겪었어. 나는 네가 생리 중에는 수영, 테니스, 또는 하이킹을 허락하지 않았어. 심지어는 설거지도 못하게 하고 집안일도 시키지 않았어. 내가 너에게 더 관심을 쏟을수록 너의 생리통이 심해지는 것을 느꼈어. 커다란 피덩어리는 어떤 생리대도 감당이 안되었어. 종종 생리 첫날에는 학교를 결석해야 했어. 몇 번은 통증이 너무 심해서 의사에게 주사를 맞아야 할 때도 있었어. 그 의사는 항상 너에게 아기를 낳는 것만이 유일한 치료법이라고 말했어. 너는 생리를 질병일 뿐만 아니라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나한테 배웠어.
폐경기에 이르렀을 때야 내가 실수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기 시작했어. 네 담당 의사는 네가 폐경을 두려워하는 것은 네 몸과 피에 대해 내면화된 부정적인 태도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설명했어. 그런 다음 의사는 목욕 오일, 거품 비누, 바디 파우더 및 럭셔리한 제품들을 구입해서, 너의 몸을 즐기고, 그 감각적인 느낌을 음미하라고 권했어. 너는 그렇게 따랐고, 그날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안면홍조(역자주:갱년기 증상)를 겪은 적이 없어. 이제 나는 많은 신체적 증상들이 여성과 여성의 신비로운 힘에 대한 가부장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어. 내가 그런 부정적인 태도를 너희에게 전달하는 동안, 넬, 너는 그것들을 너무 깊이 내면화해서 이제 뼛속 깊이*, 너무 뿌리 깊게 새겨져 있어서 쉽게 없애버릴 수도 없게 되었구나.
기억하니? 오래전에 의사가 너에게 정자를 처방해서 아이를 만들게 하려 했던 거. 그리고 또 다른 의사는 6년 동안 너에게 남성 호르몬을 처방했지. 둘 다 가부장적인 관점의 ‘치유’를 위해 남자를 보냈던 셈이야. 웃기는 일이지! 다 잊어버리렴! 그리고 네가 가질 수 없는, 건강한 적혈구를 상상하는 것도 그만하렴. 그 혈액학자 기억나니? 현미경으로 본 네 혈구를 ‘거칠고 기이하다’고 했던 사람 말이야. 그 ‘거칠고 기이한’ 혈구에 감사해야 해. 그게 지금 너를 살게 해주고 있는 거야. 그게 바로 너에게는 ‘정상’인 거야.**”
그 순간, 나는 어머니에게 이 아름다운 선물을 받은 것만으로도 우울감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어머니의 입에 입을 맞췄다. 평생 폐질환 때문에 전염 될까봐 우리에게 입맞춤을 하지 못하게 했던 어머니였지만, 그 입맞춤 속에는 그녀가 내게 주었던 모든 따뜻한 포옹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사라졌다. 즉시, 창문 오른쪽에 거대한 거미 하나가 나타났다. 회색 몸에 주황색 다리를 가진 거미였다. 거미는 어둠 속을 걸어오더니, 앞다리 하나를 높이 들어 올렸다. 이상하게도 나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거미가 내게 다가와 두 앞다리를 내밀었는데, 그 다리에는 어떤 천 같은 것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거미가 말한 것은 이 말 뿐이었다. “너희 어머니가 너를 위해 이것을 짰단다.” 나는 그 천을 받았고, 거미는 나에게 스며들듯이 사라졌다. 여신도, 어머니도 모두 나에게 흡수되었다. 나는 눈을 떴다. 밖은 이미 어두웠다. 그 순간, 내 병에 대한 나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5) 하지만 나는 여전히 거미가 나에게 주었던 천에 대해 의문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특별히 실용적이라거나 아름다운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사건들에서 나는 한 번도 여신을 의도적으로 부르거나, 소환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여신이 찾아온 방식, 그리고 그녀가 매번 어떤 식으로 나타났는지는 모두 놀라웠다… 아마도 내가 가장 크게 놀라고 충격을 받은 경험은 마지막 체험이었을 것이다.내면화된 남성 중심적 태도가 여성의 피에 대해 어떤 관념을 가지게 했는지, 그것이 현재 나의 심각한 혈액 질환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자각할 때의 놀라움. “너무 깊이 박혀 있어 쫓아낼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나는 이제 ‘거칠고 기이한 세포들’ 을 특별한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여신은 내 삶을 되돌려주었고, 내가 가진 것에 충분히 만족하고 살라고 말하면서, 내가 어떤 에너지를 스스로 소환하여 창조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으며, 또 나의 삶을 조율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 이후 나는 다시 글을 쓰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사회문제나 정치 문제에도 참여하고 있다. 마치 내 안에서 공포에 짓눌려 낭비되었던 부분- 무의식 속에 박혀있던 잘못된 이미지들로 인해 생겨난 공포를- 회복시켜준 것 같았다. 나는 특히 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개념들concepts보다는 이미지들에 따라서 행동한다는 사실을 더 명확하게 보기 시작했다; 고소공포증이 나의 무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았을 때, 어린 시절 처음으로 그 공포가 자리잡았을 때의 남성 신 이미지를 나는 자동적으로 떠올렸다. 여신은 그 오래된 이미지들을 깨부수고 산산조각을 내도록 하여, 내가 보다 성숙한 관점에서의 비행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 성숙한 관점은 사실 아미 나에게 있었지만, 아직 사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가부장적 종교에서의 하나님이 한 때 어떻게 살아있는 은유로 나에게 역할을 할 수 있었는지 더 명확하게 보기 시작했다. 수 세기에 걸쳐 이 단어들은 남성, 지배, 권력, 기존질서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가득차 있었지만, 이제는 죽은 은유가 되어버렸다.
여신은 내 존재의 신성함을 존중하는 현실을 열어주었고, 나의 자존감을 깨우쳐 주었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을 통해 우주와 그곳의 사람들을 지각할 수 있고, 더 이상 가부장적 문화나 종교가 규정한 방식에는 더 이상 의존하지 않게 해주었다. 또한, 나는 다른 성(性)을 통해서 내 정체성을 부여받거나 나를 변화시킬 필요도 없다. 그 다른 성별이 설령 목사, 아버지, 상사, 교수, 동료, 남편, 남자 연인이든 상관없다.
나는 사회적, 정치적 구조에 의해 좌절당했던 내 자신의 재능을 보면서, 이 세계에서 나의 책임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차별, 억압, 가난, 전쟁을 만드는 가부장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을 느낀다. 이제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운동(cause)’이 아니다. 그것은 나에게 여성 문제(Women’s issues)가 되었고, 다시는 나를 힘들게 만드는 "원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제 이 세상과 그 사람들을, 여성이 위계 안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었는지를 중심으로 바라본다.
여신은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깊은 공동체 의식을 일깨워주었다. 1972년 그레일빌Grailville에 있는 그 작은 여성그룹에서부터 내가 속한 작은 의례모임, 작업그룹, 실천 그룹까지, 그리고 전국곳곳에, 심지어 전 세계에 있는 여성들의 네트워크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나를 격려하고 지지해 준다. 그러한 그룹 너머, 혹은 그들 덕분에, 여성으로서 할 수 있음에 대한 비전이 솟아오른다. 즉, 우리가 자신 안에 있는 온전한 인간성을 회복하고, 정치 권력을 획득할 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비전이다. 그 비전은 겉으로 보기에는 걷힐 것 같지 않는 가부장적 안개 속에6)갇힌 채로 살아가는 여성들, 깨뜨릴 수 없어 보이는 굴레 속에 갇힌 여성들까지 포함한다. 그 비전은 버지니아 울프가 셰익스피어의 여동생을 살려내라고 우리에게 촉구했듯이 과거의 어떤 것을 되살려낸다.
우리의 역사, 문학, 신학 및 기타 분야에 대한 연구는 우리 앞선 여성 조상들의 무덤을 부수고 그들이 다시 대지를 걸을 수 있게 하고, 이 땅을 신성한 곳으로, 모든 사람의 선함과 건강, 정의를 위한 공간으로 주장할 수 있게 해준다. 여신은 내가 복종했던 신학적 신비화의 많은 부분을 제거해 주었는데, 그것은 우리가 신체적으로 가까워 졌을 때에 타인의 순수한 인간성을 보거나 즐기는 것을 막고 있었다. 인간이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도 아니고, 우리가 어디론가 향해 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것도 아니다.
우리는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 자궁으로부터 나왔다. 우리의 기원을 인식할 때 우리는 현존(present)을 경험하게 된다. 상호 많은 도움을 주고받으며, 사랑이 넘치며, 우주적 에너지와 접촉하는 이러한 신체적인 경험은 우리의 공동 유대감, 비전, 그리고 대지에 뿌리를 둔 존재로 느끼게 한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Julia Kristeva는7) 이러한 경험이 “과학이외의 논리”에 응답한다고 했으며, 이것은 “좀 더 진실에 다가가려는” 탐구, 그리고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 내부로부터, 함께 나누는 권력을 위한 경험이라고 지적했다. 여신이 스스로 그 장면 밖으로 벗어날 때,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하나가 되는 온전한 유산을 더욱 잘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의 섹슈얼리티가 우리 존재 전체로, 우리 자신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우리 마음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주장할 수 있다.
이러한 내면의 일체감, 그리고 서로간의 연결함은 우리를 여성들 사이에서 더욱 에로틱한 관계로 이끈다.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의 마음에서 아름다움을 보고 마음으로 사랑하게 되면, 그녀는 자기를 충족시키는 또 다른 차원의 힘을 발견한다. 여신은 의존적인 존재로서의 나의 이미지를 부수고 내 머릿속을 맑게 만들어 내가 본래 가지고 있던, 그러나 그 이전의 제한적인 이미지가 제거되기 전까지는 결코 알지 못했던 나의 힘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나의 어머니로 안내해 준 여신과의 마지막 경험은 그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깊은 경험이었다. 그것은 어머니 자신이라는 선물이었다.피는 생명의 강력한 상징이기 때문에, 어머니의 피를 그녀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했다는 의미로, 그리고 나의 피를 내가 어머니를 태어나게 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생생한, 어머니와의 입맞춤, 그리고 그 피의 언약의 인장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거미! 다시 놀랍다! 누가 거미를 이런 결과로 상상이나 했겠는가! 특히 거의 내 몸만큼이나 큰, 오렌지색과 회색을 띄고 우아하게 긴 다리로 어둠속에 가볍게 겉는 거미를, 그리고 결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지 않은 거미를! 나는 그 거미를 과학적으로는 확인할 수는 없었다. 색깔과 모양이 가장 비슷한 것은 미국 집거미중의 하나인 시시포이데스Sisyphoides로, 거미줄을 만드는 종류이다. 그러나 여신은 가부장적 시간이나 공간에 한정되지 않기 때문에, 거미에 대한 신화는 기존의 과학적인 분류나 연구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의미를 가질 것이다.
초기의 미국 인디언 몇몇 부족들, 특히 호피족은 거미여인Spider Woman을 지상과 지하세계의 창조주로서 숭배했다. 그녀는 땅속에 집을 짓고 살며, 지구어머니로 알려졌고, "시간만큼 오래되었으며……. 영원히 젊다" 고 알려졌다. 그녀는 "나는 빛을 받아서 생명들을 길러낸다. 나는 앞으로 태어날 모든 것의 어머니다." 라고 조용히 노래했다. 그러나 거미여인은 지하세계에 살았다.8) 멕시코인들은 해가 지는 서쪽의 큰 구멍에 있는 거미를 보았고, 그것을 모든 생명이 죽음으로 빨려들어가는 원형적 자궁으로 인식했다. 아즈텍인들은 이 자궁을 ‘여성들의 장소place of the Women"라고 불렀으며, 인류가 이곳으로부터 기어나왔다고 했다. 이러한 자궁으로서의 거미는 생명과 "시간 이전의 시간...태양이 만들어지기 전의 시간"을 상징했다.9) 생명과 죽음의 여신으로서 거미는 또한 위대한 어머니, 운명을 짜는 존재이기도 했다. 새로 태어난 아이는 그녀가 짰던 천이고, 반대로, 그녀가 짰던 천은 새로 태어난 아이다.10)
마침내, 거미여신the Spider Goddess은 여정이나 길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미로형 또는 나선형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언제나 걷거나 춤추는 원형(archetype)“이다. 나의 경험을 이 신화와 연관시켜보면 ; '어둠 위를 걷는' 거미의 두드러진 다리는 나의 여정을, 어머니의 몸에서 짠 천은 나의 새로운 탄생을 긍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천은 가부장적 시공간에서 사용할 수 없고, 여신은 시공간에 국한되지 않기에, 천은 죽음과 탄생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나는 천에 대한 물적 증거가 없으니 그것은 여신, 어머니, 거미와 함께 내 안으로 사라졌다고 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녀가 짰던 천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 나는 새로 태어난 아이이다.
그날 오후의 여정은 나와 어머니와의 관계를 분명하게 의식하도록 이끌었다. 에릭 노이만Erich Neumann은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신비는 다음과 같다. 원초적 상황이 새로운 차원에서 회복된다. 그것은 딸이 모든 면에서 어머니와 동일시되고, 모든 면에서 변화되는 것이다. 이 일치가 엘레우시스의 신비Eleusinian mysteries 핵심이다. 여신의 세 가지 방식의 등장 -그녀 자신, 나의 어머니, 거미-그리고 나 자신!
나는 세 번 축복받았다!.11)
현대 여성운동의 물결 속에서 여신의 등장은 중요한 현상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세계인들이 우리의 내적 힘과 진솔함에 관심을 가질수록 그 중요성은 더욱 강조될될 것이다. 여신은 남성중심의 신이라는 정교한 위계체계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음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마도 여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여성 스스로의 변화일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지금 이 시기에 여신이 다시 나타난 것은 심오한 은유적 의미와 전지구적 균형을 보여준다. 역사상 이 시기에 여신의 재등장은 심오한 은유적 의미와 전 지구적 규모의 중요성을 지닌다. 여성은 더 이상 옹호자가 없는 존재가 아니다. 창조 자체에 뿌리 내린 존재로서, 우리의 경험을 정당화하고 확증해 줄 존재가 생긴 것이다.
주석 NOTES
1.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 근처에 위치한 Grailville은 가톨릭 여성 공동체이며, 타이어 구조로 모든 구성원이 상호 완전하게 참여할 수 있는 곳이다.
2. 그녀에게 다가가는 사람을 감싸듯 크게 뻗은 날개를 가진 이시스Isis의 이미지이다. 그녀의 은색 복제품은 Carole Etzler가 나에게 주었다.
3. 캘리포니아 클레어몬트에 있는 순례지
4. Grailville에서 열린 신학교 여자부는 6주간의 강좌로 여성들에게 개설되어서, 학점을 받을 수 있었다. 페미니스트 이론, 신학, 실천을 주요 주제로 다루었다.
5. Sideroblastic 빈혈은 과잉 철분이 어린 적혈구 주위에 고리를 형성하여 성숙하지 못하게 하는 골수 질환으로, 알려진 치료법이 없다. 특정 약물과 수혈은 수시로 해야 한다.
6. Susan Griffin, Women and Nature(New York: Harper & Row, 1978).
7. Julia Kristeva, Desire Language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0). 첫 번째 에세이 "언어학의 윤리"를 참고하라.
8. G. M. Mullet, Spider Woman: Stories of Hopi Indians (Tucson, AZ: University of Arizona Press, 1979). 15.
9. Erich Neumann, The Great Mother, The Bollingen Series XL, VII (Princeton, NE: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2), 184-85.
10. Ibid., 177.
11. Ibid., 305-8.
출처:Judith Plaskow, Carol P. Christ(1989), Weaving the WisionWeaving the Visions: New Patterns in Feminist Spirituality, San Francisco : Harper & Row, pp.111-118
* 고대 그리스의 마을인 엘레우시스를 기반으로 하는 그리스 신화의 두 여신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의 컬트 종교이자, 이 컬트 종교의 가르침 또는 이 컬트 종교가 엘레우시스에서 매년 또는 5년마다 개최한 신비 제전 또는 비전 전수 의식을 가리킨다. 지하 세계의 왕인 하데스가 데메테르로부터 페르세포네를 납치하는 신화를 바탕으로 하는데, "실락 (상실)", "탐색", "승천"의 세 단계의 사이클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세 단계 중 엘레우시스 밀교의 중심 테마를 이루는 것은 페르세포네가 "승천"하여 그녀의 어머니 데메테르와 재합일하는 것이다. 엘레우시스 밀교는 고대 그리스의 주요한 축제 중 하나였으며 후에 고대 로마로 확산되었다. 엘레우시스 밀교의 의식은 오랜 고대로부터 비밀로 지켜져 왔으며 밀교 참여자는 사후 세계에서 보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사후 세계의 비전(vision)과 마법적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엘레우시스 밀교의 큰 영향력과 오랜 기간 동안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의 이유를 환각제를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일부 학자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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