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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ynandrous Great Mother 자웅동체의 위대한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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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5-05-23 16:54 조회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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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ynandrous Great Mother

자웅동체의 위대한 어머니

 

사실, 서구 기독교의 “연약한 여성성”과 “강인한 남성성”에 대한 고정관념은 역사적으로 볼 때 가장 극단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특권 계층 사이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이 성역할 특성은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여성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성역할 수행을 “놀이”로 만드는 일상을 유지하고자 하는 생활방식을 가진 사람을 위해 시작되었다. 중국의 부유한 남성들은 아내들 사이에 전족을 강요하며 “심미적인” 그리고 즐거움을 느꼈는데, 이는 특권계층이라는 표시였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현대 서구사회에서도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는 성역할은, 한때는 특정 집단의 고유한 것이었지만 이것이 부유한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또다시 미디어를 통해 “군중들”에게 전승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여직원이 직장 내에서 하이힐을 신고 비틀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신발은 처음에는 성스러운 성직자들이 땅속으로 탈출할 수 있는 신비로운 힘(mana)을 유지하도록 고안되었는데, 이후 왕족들이나 “궁전의 신하와 그들의 부인들”에게 전파되어 이들도 신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신발은 일반 사람들도 이용하기에 이르렀다. 다수에게 공평한 것을 중시하는 “민주주의”가 해냈던 중요한 역할이다. 불행히도, 가장 어리석은 성역할의 대부분은 그들의 문화와 계급에서 시작되었다는 기원을 사람들은 잊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자연으로부터” 혹은 “신으로부터” 직접 왔다고 믿거나, 멋이라고는 없는 가혹함으로, 혹은 때때로는 가장 엄격하게 법으로 지킬 것을 강요하는 어리석은 관습들을 만든다.

 

극단적인 성편견적인 역할은 완고한 이성애, 지적인 이원론, 그리고 노동 착취적인 문화를 만들어낸다. 원시 사회에 이런 것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존재해왔던 성적 관습의 다수는 단지 “우리들의 것”과 “우리들의 것이 아닌 것” 일 뿐이었다. 예를 들면 수렵-채취시기에 원시인들 사이에 ‘집’은 여성의 재산만이 아니라 그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만약 그것이 이동가능하다면 그녀의 등에 메고 옮기는 것이다. 전통적인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여성들이 바지를 입으면 남성들은 치마를 입기도 했다. 아내가 산통을 겪을 때 남편이 옆에서 함께 산통을 겪는 쿠바드(couvade)풍습에서는, 남편들이 온몸을 비틀고 이빨을 갈며 괴로워할 때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쉽게 출산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인 12세기 아일랜드의 토속신앙pagan 가운데는, 여성들은 서서 오줌을 누고 남성들은 쪼그리고 앉아서 오줌을 누는 것도 있었다. 성역할과 관습에서 “여성은 항상 이것을 했다”, 거나 “남성은 분명히 이것을 했다”라는 절대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맞지 않다. 어떤 문화, 어떤 지역, 어떤 시간이라는 특정한 제한이 없다면 즉각적으로 반박당할 수도 있다. 사실, 아주 오래 전에, 양성적이거나 혹은 자웅동체는 위대한 어머니였다. 샤롯 울프(Charlote Woolf)는 『여성들 사이의 사랑』Love between Women이라는 책에서, 고대 여성들은- 아마도 오늘날 레즈비언 여성들의 특성과 가까운- 강인함, 독립심, 그리고 인식적 통합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첫 번째 사랑의 대상은 어머니이다; 그러나 가부장제하에서, 아들은 “진정한 남성”으로서 아내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어머니를 거부해야 한다, 그리고 딸은 “남성에 순종하기 위해” 어머니를 배반해야 한다. 가모장제 사회에서는 신체적, 정신적인 배신이라는 이러한 이중 부담은 발생하지 않는다. 여성과 남성 모두 어머니, 어머니 지구, 그리고 우주적인 어머니를 가지고 있으면서 어머니와 동일시한다. 그리고 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양성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양성애적인 성향을 지니게 된다.

부족민이나 페이건(토속신앙) 남성들에게서 동성애는 어머니, 혹은 여성을 거부해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종종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것은 어머니의 아들처럼 남성을 향한 사랑, 남성을 향한 친밀감이 기반이 된다. 그리고 여성들 사이의 여성 동성애는 남성에 대한 공포나 거부가 기반이 되는 것이 아니고, 어머니와 함께, 그리고 그녀 자신의 여성적임(femaleness)과 함께 결합되고 재건하기 위한 딸들의 열망에 기초하고 있다. 아들과 딸 양쪽에서 존재하는 어머니집단은 강하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이고, 성적으로 자유롭고, 예지력이 있는 여성이다. 남녀 양쪽 성에서 이상적인 여자다움(womanliness)은 가부장적 문화처럼 억압에 의한 강압적이고 어리석은 복종이 아니다.

 

가장 오래된 많은 여신 이미지들에서, 그녀는 자웅동체의 가슴과 남근, 예를 들면 수염이 있는 전쟁의 여신인 이슈타르(Bearded Ishtar)를 보여준다. 신성한 영성은 특히 그녀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넘어서, 정서적-신체적 표현은 물론 영적인 표현까지 그녀의 절대적인 힘을 강조한다. 다양한 원시문화에서 남성 샤먼은 여성옷을 입고 여성처럼 생활하고, 종종 동성애적 관계를 맺는다. 신석기시대의 여신은 그녀의 사원에서 양성애 혹은 여성 동성애자 사제, 양성애 혹은 동성애 사제의 섬김을 받는다. 후기 신석기시대의 무질서함 가운데 가모장제가 가부장제로 전환되고, 거세된 내시들, 남성신과 성적 식별에 탐닉하면서 거세된 남성들이 여신을 섬긴다. 

고대 유대 금욕주의의 한 파인 에세네파 - 예수가 속했던 셈족의 한 갈래- 의 사원이던 터키 서해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 사원에는, 남성이 여신을 섬길 수 없으니 남성을 거세해서 여신을 섬기게 했다. 이 시대에는 남성은 고대 위대한 어머니와, 혹은 수많은 새로운 남성신, 이 양 측면에서 자신을 동일시하며 헌신하기를 강요받으며 극단적인 압박을 받았다. 왜냐면 이러한 행위들은 이 세상에 광신적인 섹스 공포증으로 새롭게 떠오른 가부장적 여성혐오의 등장과 함께 정치화되었기 때문이다.

 

창조적인 여성과 남성은 예나 지금이나 살아있는 존재들 속에서 엄격한 이성애를 강요당하고, 성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인 모든 수준에서 경직된 삶을 살아가도록 압박을 받는다. 이는 육체적이고 정서적인 한계는 물론 신체적인 한계를 가져온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반으로 나누어지고, 반은 자물쇠로 잠겨있고 다른 반은 금지되어 있는 것과 같다. 우리는 영혼의 아주 깊은 곳에 있는 본질적인 양극성이라는 이 도덕적인 반발로 ‘자아’를 대립하게 하고, 우리 자신으로부터 대립시켜서 분열시킨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전쟁, 죽음으로부터의 탈출 불가(necrophilia), 그리고 위대한 어머니라는 뿌리로부터의 소외를 가져온다. 만약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다. 완전한 자멸인 상호간의 살인에 의해서.

에스터 하딩(Ester Harding)이 『여성의 신비, 고대 그리고 현대』Women's Mystery, Ancient and Modern, 에서 말한 것처럼 현대 여성은 그녀라는 존재의 핵심, 삶의 근원으로부터 차단되어 있다. 엄격하게 부여된 이성애적 역할로, 여성(그리고 남성 역시)은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또한 심리적으로 성장을 방해 받는다. 고대 그리스신화 속 여전사 아마조네스의 부조들과 조각상들, 혹은 거대한 켈트족 여전사들과 우리들을 비교하면! 고대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로부터 온 퀠트족으로 인해 사라진 픽트족의 땅에는 아주 신비롭고 전설적인 여전사가 살았다. 그들은 종족의 비밀스러운 권능과 예지력의 후견인으로써, 레즈비언/양성애적 자매애로 뭉친 아마조네스 전쟁-투사와 마녀-샤먼이었다. 

 

제인 마카레(Jean Markale)의 『퀼트의 여성』Women of the Celts에 의하면 모든 위대한 켈트족 전사-영웅들은 무기 전문가였고, 또한 섹스의 성스럽고 신비로운 의례 행위자였다. 픽트족은 모든 셀틱 지방의 벌거벗은 특공대였다; 그들은 여성과 남성이 차례로 전투에 나갔는데, 이 때 그들의 몸에는 지구의 어머니에게 신성한 색깔인 파란색(대청: 고대인들이 몸과 얼굴에 칠하는 데 쓰던 청색 물감)을 칠했다. 그들은 픽트(Picts)라고 불렀는데(인도나 유럽은 Peik(‘문신을 하고’라는 뜻), 북부 켈트어나 라틴어는 pictus(‘그림이 그려진’이라는 뜻), 요술새, 곤충, 그리고 위대한 어머니에 속해있는 물고기를 이 파란색의 타투로 그들 자신의 몸 전체를 장식했다. 그들은 공동의 섹스 의례들을 행하였고, 종종 의례적인 식인행위도 했다.

이 켈틱 여성들은 엄청난 신체적 강인함과 전쟁터에서의 맹렬한 용맹성으로 유명했다. 로마 역사가들은 갈리아사람들 가운데 여성들은 남성들만큼 키가 컸으며 똑같이 용감했다고 기록했다. 게르만족사람들은 물론 켈틱 부족은 종종 여왕전사가 전쟁을 이끌었고, 침략했던 로마병사들은 여전사가 남성전사보다 더 두려웠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브리파울트(Briffault)가 반복해서 강조했던 것처럼, ‘원시 사회’ 사람들 가운데 신체적 습관과 ‘문명화’된 역할 놀이에 오염되지 않은 사람이 있고, 남아있는 조각들에서 종종 남성보다 더 크고 거대한 근육과 견고한 강인함을 갖춘 여성을 찾는 것은 흔한 일이다. 석기시대에 네안데르탈인의 골격은 그 사이즈나 뼈의 무게로 성별을 구별할 수 없는 경우도 종종 있다. 초기 여성과 남성은 동상들도 거의 동일하며 강인함도 동일하다. 가장 오래된 고대 구석기 시대의 여신의 이미지를 보면, 단단해 보이는 강인함과 신체의 육중함은 완벽해 보인다. 

그리고 초기의 인간 종족, 인류가 길고도 힘든 시대를 견디며 생존해오는 동안 여성이 신체적으로 나약하고 정신적으로 의존적이었다면, 지구 변화의 대변동이 일어났던 2, 3백 만 년 동안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앤 카메론(Anne Cameron)의 벤코버섬으로부터 온 태평양 인도여성의 이야기인 『쿠퍼여성의 딸들』Daughters of Copper Women 초기 여성에게 필요했던 강인함이 생생하게 담긴 그림을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어머니로서,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음식, 그리고 주거 생산자, 현명한 여성, 예지자로서, 창조자와 모든 사람들의 문화의 보호자로서, 여성들은 엄격한 신체적 훈련 프로그램을 견뎌내야 했다. 사춘기 전 오래 동안 모든 몸, 마음, 팔과 다리 근육 등, 그들이 되고자 하는 데 필요한 영적인 모든 힘을 개발해서, 결국에는 여성으로 성장했다! 즉 완벽하게 진화한 인간이 된 것이다. 과거 모계중심의 스파르타 젊은 여성들도 훈련되고 강건한 신체로 발달시켰다. 그들이 결혼했을 때, ‘결혼 의례’ 속에는 그들의 새 파트너와의 레스링 경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문명화된’ 가부장제 사회에서, 달리 말하면, 신체적으로 덜 발달하고, 생기가 없고, 성적인 욕구가 없는 여성은 소위 ‘정상적인 삶’이라고 부르는 삶을 살았다. 여기에 기억할만한 정신외과에 기반한 주장이 있다:생기가 없는 여성은 좋은 주부가 된다... 이것은 생기가 없는(남성보다) 여성에게 사회적으로 더욱 허용될 수 있다. 왜냐면 철저한 파괴 활동인 창의력은 “여성에게 소모적인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부분적인 자유란 없다. 그 어느 누구도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성적으로 억압받고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면; 그 누구도 “성적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경제적으로 노예라면. 그 누구도 “신체적 자유”를 즐길 수 없다. 억압에 의해 육체노동과 섹슈얼리티가 착취당하고 신체의 활동이 억제된다면. 만약 우리가 신체적인 공포증과 성적· 사회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착취당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영혼의 자유”를 가장한다면, 이는 우리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자유는 전부가 아니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이 자유롭지 않은 한, 남성, 특정 계급, 특정 인종을 위한 자유도 없다.

 

고대 양성애적인 여성은 발명가, 과학자, 건축가, 예술가, 치료자, 예술과 문화 생산자, 샤먼, 황홀한 공상가, 전사, 그리고 지도자였다. 우리 삶의 에너지가 우리의 반대편인 그들, 문화와 종교적 전형에 의해 장벽이 만들어지고 파괴되는, 과 분리되지 않을 때, 이것은 우리들의 완전한 잠재력이 된다. 우리의 에너지가, 자웅동체의 위대한 어머니 그 자신의 힘으로 상징되는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자유롭게 흐를 때, 이것은 우리의 잠재력의 시작일 뿐이다.

 

출처:Monica Sjöö,Barbara Mor(1981),The Great Cosmic Mother: Rediscovering the Religion of the Earth.HarperOne,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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