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여성의 관점에서 본 총무원장 직선제(범불교시국회의 토론회 발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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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5-11-24 23:22 조회27회 댓글0건본문
<토론문: 재가여성의 관점에서 본 총무원장 직선제>
옥복연(사)불교아카데미 원장)
범불교시국회의 2차 토론회 “직접민주주의와 종도참여주의,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토론자로 참여하게 되어 뜻깊게 생각한다. 앞서 발제하신 손호철교수님은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을 발전시키기 위한 고민과 더불어 불교 내부의 민주화에 대해 애정어린 제안을 해주셨다. 광천스님께서는 ‘종도주권의 실현으로서 총무원장 직선제’의 실현을 위한 과제‘에서, 특히 승가공동체 회복을 위한 첫걸음으로 직선제와 재정공영화를 강조하셨다.
참으로 시의적절한 주제이며, 두 분 발표자의 제안 또한 소중하다. 그러나 오늘 논의의 주제는 너무 넓고 오래된 문제이기에, 재가여성의 관점에서 조계종단의 민주화와 총무원장 직선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중심으로 미력하나마 소견을 밝히는 것으로 이 토론에 갈음하고자 한다.
1. 누가 종단의 주인인가?
참정권(參政權, political rights)은 국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본적 권리이며, 대통령 직선제는 그 대표적 모델로 평가된다. 이에 비추어 불교 종단의 운영에 참여하는 권리를 ‘참종권(參宗權)’이라 할 때, 이는 총무원을 비롯한 종단의 주요 기관에서 행하는 정책 입안·집행·감시 과정에 사부대중이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조계종단은 총무원장 선거 시기가 다가올 때마다 직선제를 반복적으로 거론했지만 실질적 제도 변화는 이루어지지 못한 채 공식 담론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현행 조계종 구조에서 총무원장은 종단 행정의 수반이자 종무행정을 총괄하는 핵심 지도자로, 대내외적 대표로서 종책의 추진 및 사회적 이슈에 대한 대응을 담당한다. 그러나 종헌 제8조는 종단의 구성원을 “승려(비구·비구니)와 신도(남성·여성 불자)”라 규정함에도, 총무원장 자격은 종법을 통해 ‘비구’로만 한정되어 있다. 또한 선출 과정 역시 소수의 비구(와 극소수의 비구니) 중심 구조로 이루어져, 종단이 법제도를 통해 신분·성차별을 정당화해온 이 문제는 이미 1962년 종단 설립 시기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후 한국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총무원장은 취임 때마다 ‘종단 민주화’라는 기치를 내세웠다. 제33대 총무원장은 종단의 자성과 쇄신을 강조하며 ‘한국불교 중흥 대토론회’에서 비구 승가의 의식 전환 없이는 왜곡된 종단 구조의 교정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제시된 바 있다. 또한 비구·비구니, 남녀불자가 모두 종단 운영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필요성 역시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제34대 총무원장은 대중공사 활성화를 통한 참종권 확대를, 제35대 총무원장은 선거문화 개선을, 제36대 총무원장은 ‘소통·화합·혁신’을 통해 승가 공동체 정신의 회복을, 제37대 총무원장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입각한 수행과 중생 이해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선언적 약속에도 불구하고 총무원장 직선제는 제도적 진전을 이루지 못한 채, 조계종은 다시금 38대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직선제 논의가 단순한 선거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종단 구성 주체의 정체성과 종단의 민주적 정당성 회복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차원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직선제가 가능한가의 문제는 제도의 기술적 타당성에 앞서, ‘누가 종단의 주체이며, 누구에게 종단 운영의 권리를 부여할 것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2. 왜 재가여성을 말해야 하는가?
한국불교 교단에서 여성 신도는 명백한 다수를 차지한다. 한국갤럽의 “한국인의 종교 1984-2021” 조사에 따르면 불교 인구 중 여성은 20%로, 남성(12%)보다 월등히 높다. 조계종이 발표한 「2023-2024 통계자료집」에 따르면 등록 신도 또한 남성 251,206명, 여성 477,326명으로 종단 내 여성신자의 비율이 현격하게 높게 나타난다. 법회·기도·사찰 재정 후원 등 신행과 운영 전반에서 재가여성의 기여는 절대적이며, 종단 유지의 상당 부분이 이들의 헌신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실질적 역할과 달리 재가여성은 종단 제도적 구조 속에서 지속적·체계적으로 주변화되어 왔다. 여성 신행은 오랜 기간 ‘기복불교’로 폄하되었고, 신도회나 불교 단체의 실질적 활동은 여성들이 담당함에도 대표직은 남성이 당연시되는 관행이 유지되어 왔다. 특히 비구 중심의 종단 권력 구조 속에서 재가여성은 ‘재가’와 ‘여성’이라는 두 지위를 이유로 신분·성차별을 동시에 경험해 왔으며, 이는 제도적 권한 축소로 이어졌다. 실질적 주체와 제도적 주체가 일치하지 않는 이러한 구조적 모순은 재가여성들로 하여금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게 한다.
“한국불교 조계종이라는 공동체에서 진정한 주인은 누구인가?”이 문제는 비단 재가여성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성차별적 구조는 비구니 승가 역시 규율하고 억압한다. 이부승 수계 제도, 팔경법, 총무원장·교육원장 등 주요 종단 지도부의 자격을 ‘비구’로 제한하는 법조항 등은 비구니승가를 구조적으로 종속적 위치에 놓아 왔다. 그 결과 비구니들은 종단 내에서 순응성과 수동성의 문화를 강요받기도 하며, 비주류화와 낮은 대표성 문제는 비구니 승가의 자존감과 사회적 위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4년 조계종단 출가자의 성비는 비구 5,696명, 비구니 4,986명으로 큰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단 내 8명의 부장스님 중 비구니는 단 1명에 불과하며, 중앙종회 의원 81명 중 비구니는 10명뿐이다. 예비승가의 성비 격차는 더욱 심각하다. 사미 500명에 비해 사미니는 214명으로 절반에도 못 미치며, 행자 역시 남행자 54명, 여행자 27명으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기성 종교 전반에서 여성 성직자의 감소 현상이 관찰되기도 하지만, 조계종의 경우 이처럼 급격한 감소는 단순한 시대적 현상을 넘어, 종단 내부의 구조적 성차별이 지속적으로 작동해 왔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결국 총무원장 직선제 논의에서 재가여성을 중심에 두는 이유는 단순히 ‘여성이라서’가 아니다. 즉, 직선제 논의는 재가여성의 존재론적 위치를 재정의하는 과정이며, 종단의 민주적 정당성과 교단 운영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적 전제라 할 수 있다.
3. 누가 총무원장 직선제를 외면할 수 있는가?
총무원장 직선제의 핵심은 사부대중의 종단 대표성을 확대하는 데 있다. 만약 직선제가 ‘출가자 직선제’로 제한된다면, 이는 여전히 신분 차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며 재가자를 소외시킴으로써 직선제가 갖는 제도적 정당성을 훼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직선제가 사부대중의 선거 로 발전한다면, 재가자는 종단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실질적 통로를 확보하게 되며, 이는 한국불교 민주화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이미 우리나라는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을 제정하였으며, 1995년 UN의 ‘북경여성행동강령’을 채택하면서 성평등 실현을 위한 성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전략을 도입하였다. 또한 「여성발전기본법(1995)」, 「양성평등기본법(2014)」 등을 제정하여 국가 차원의 법·제도적 성평등 을 지속적으로 강제해 왔다. 한국불교 내부의 성평등 문제는 사찰 내 노동의 성별화, 비구니 승가의 제도적 한계, 종단 내 여성 리더십 부재 등 여러 층위에서 드러나고 있으며, 총무원장 직선제는 여성의 권한 강화를 ‘논리적 귀결’로 가져올 수 있는 구조적 변화로 작동할 수 있다. 재가여성의 선거권 확대는 곧 종단의 성평등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첫 단계가 될 것이다.
또한 최근 조계종에서 발생하고 있는 여러 재정 관련 사건들은 종단의 대사회적 신뢰를 약화시키고 종도들의 자존감을 크게 훼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조직에서 여성의 참여는 재정 투명성의 제고에 기여해 왔다는 경험적 연구들이 축적되어 있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재가여성의 참종권 확대는 광전스님이 제안한 ‘재정 공영화’ 구현과도 맞물려 종단의 사회적 신뢰 회복에 기여할 수 있다. 이는 나아가 불교 공동체의 청정성을 회복하는 데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승가중심 종단 구조 속에서 재가자가 참여할 수 있는 공식적 통로는 「신도법」, 「포교사단법」, 「종무원법」, 「사찰운영위원회법」 등이 있으나, 이들 제도는 재가자의 지위를 ‘출가자 지원 역할’에 머물도록 만드는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 따라서 총무원장 직선제 논의는 단순한 선거제도 개편이 아니라, 출가·재가·남성·여성불자 등 사부대중 모두의 권리 확장과 종단 운영 구조 전반을 재설계해야 하는 중대한 개혁 과제이다.
4. 총무원장 직선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직선제 논의는 오랜 기간 동안 출가자 내부, 그리고 출가자와 재가자 사이에서 갈등과 대립을 반복해왔다. 이처럼 논쟁이 장기화되고 갈등이 격화될 때, 우리는 붓다의 가르침과 한국불교 사상 전통에서 해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특히, 토론자가 불교학 전공자는 아니지만, 원효의 화쟁(和諍) 사상은 ‘각 입장이 지닌 부분적 진리(一分有理)’를 긍정하되, 차이를 소멸시키는 단순한 절충이 아니라 차이가 지닌 진리의 의미를 드러내어 더 높은 차원의 통합을 도모하는 변증법적 대안 제시라고 생각한다. 즉 화쟁은 배제와 선택의 논리가 아니라, 상호 인정에 기반하여 ‘새로운 질서’를 구성하는 창조적 방법론이다. 단순히 갈등을 중단시키거나 일방의 입장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공통 원리나 궁극적 지향점을 중심으로 재구조화함으로써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해법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바로 화쟁의 핵심이다.
직선제 논쟁을 화쟁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면, 각 집단의 입장은 모두 일정한 ‘부분적 타당성’을 지닌다. 예를 들어 ‘출가자 중심 직선제론’은 종단운영 책임의 대부분을 출가자가 맡아 왔다는 전통적 역할 분담에 근거한 타당성이 있다. 반면 ‘사부대중 직선제론’은 재가자, 특히 재가여성의 참종권 확대를 통해 종단 민주주의와 성평등을 실현해야 한다는 타당성을 갖는다. 출가와 재가는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지만, 종단 전체의 청정성과 민주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동의 책임을 지니므로 어느 한 입장만을 절대적으로 옳거나 그르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각 입장의 장점을 포섭하고, 상호 인정에 기반한 새로운 종단 운영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화쟁적 해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화쟁을 적용한 직선제 개혁의 구체적 방향은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출가자와 재가자의 역할은 다르지만 종단이라는 공동체의 청정성·민주성·사회적 책임성은 사부대중 모두의 권리이자 책무라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둘째, 종단 운영을 오랫동안 책임져 온 출가자의 전통적 역할을 인정하되, 변화하는 사회 환경과 성평등 가치에 부합하도록 재가자, 특히 재가여성과 비구니 승가의 정치적 권한을 점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즉 전통성과 민주성, 성평등성의 조화를 이루는 구조 재설계가 필수적이다.
특히 원효의 화쟁적 방법론은 재가여성의 참종권을 확장하는 데 두 가지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다. 첫째, 화쟁은 갈등을 ‘배제’나 ‘승패 결정’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여 통합적 해법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직선제 논쟁의 재구조화에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예컨대 직선제의 전통성, 민주성·성평등성 강화라는 가치와, 기존 제도 변화에 대한 우려를 조화시키기 위해 “단계적 참여 모델”을 채택하는 방안이 화쟁적 통합모델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1단계는 출가자 직선제를 도입하되, 재가자(특히 재가여성)의 정책 결정 참여 기구를 제도화한다. 2단계는 출가자 직선제를 유지하면서 일부 재가자에게 제한적 참정권을 부여하여 부분적 공동 참여를 실현한다. 3단계는 출가·재가 공동 직선제로 전환하여 전통성·민주성·성평등성을 균형 있게 통합한다.
둘째, 재가여성 참종권 확대는 이해 집단의 요구가 아니라 한국불교의 성숙을 위한 구조적 개혁이다. 붓다가 강조한 평등의 가르침을 현대적 종단 운영에 구현하는 것이며, 종헌에서 선언한 ‘사부대중의 평등한 공동체’라는 이상에 부합한다. 또한 재가여성 불자의 역량을 종단 운영과 포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한국불교 전체의 역동성을 강화하는 길이며, 미래세대 포교를 위해 필수적이다. 이는 현대 국가가 성평등을 국가 발전의 핵심 요소로 인식하여 전담 부처를 설치하고 여성정책을 추진해 온 흐름과도 연결된다. 여성의 능력 개발과 참여 확대가 사회 발전의 에너지로 작용하는 것처럼, 재가여성 불자의 능력 역시 종단 혁신의 동력이 될 수 있다.
5. 전환점에 선 종단, 어디로 갈 것인가?
총무원장 직선제는 단순한 제도 개혁에 그치지 않는다. 재가여성에게 직선제는 “우리가 투표할 수 있는가?”라는 절차적 질문을 넘어, “우리는 종단 공동체의 주체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한다. 원효의 화쟁사상은 모든 존재가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겉으로 드러나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궁극적 진리는 하나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일심(一心)의 관점에서 원효는 당시의 엄격한 계율조차 시대적 상황과 현실에 맞게 유연하게 해석하였다.
이러한 가르침에 비추어 보면, 출가와 재가가 오랜 논쟁과 불신의 구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먼저 만나서 서로의 입장을 말하고 듣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상호 인정을 바탕으로 통합적 제도 설계를 함께 모색해야 한다. 직선제가 사부대중의 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면, 이는 한국불교의 민주성 확대, 성평등 거버넌스 구축, 종단의 사회적 신뢰 회복이라는 세 가지 변화를 동시에 이끌어낼 수 있다.
이제 재가여성은 ‘봉사와 희생’의 자리가 아니라, 종단 미래를 위해 함께 논의하고 책임지는 주체로서 역할을 수행해야한다. 재가여성의 참여가 보장되는 직선제 논의는 한국불교가 앞으로 어떤 공동체를 지향할 것인지에 대한 가치 선언으로, 한국불교의 미래를 보다 민주적이고 평등한 방향으로 이끄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출처: 범불교시국회의 2차 토론회 “직접민주주의와 종도참여주의,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2025.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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