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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 민족의 고난과 투쟁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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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5-03-31 13:03 조회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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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 'Former Seodaemun Prison of Seoul')

 

-1905년 일본은 대한제국과 강제로 ‘을사조약乙巳條約)’ 을 맺고, 통감부(統監府)를 설치하여 대한제국의 내정에 간섭함.1907년 고종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으로 일제 저항이 확산됨.

 

-이를 통제하기 위해 1907년 ‘경성감옥서(京城監獄署)’가 종로에 만들어짐.일본에 반대하는 의병전쟁은 더욱 격렬해지고 수감자가 늘어나자 서대문 현저동에 서대문형무소를 새로 지음

 

-1908년 10월에 문을 연 한국 최초의 근대식 감옥이자 한국 민족운동가들을 구금하고 탄압하였던 민족의 고난과 투쟁의 장소.

 

-초기에는 의병 운동 참가자들을 수감하는 장소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를 수감하는 공간. 일제는 독립운동가를 ‘사상범(思想犯)’이라고 부르며 감옥 내에서도 철저하게 격리시키려 함

 

-일제하에 18세 미만의 여성, 10년 이상을 선고받은 자, 그리고 무기수를 수용했고, 3⋅1 운동, 6⋅10 만세 운동, 광주 학생 운동 등에 참여했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됨

 

-1944년 기준 2,890명이 수용됨. 백범김구 선생, 강우규 의사 등 투옥 중 고문을 당했고,유관순 열사는 서대문형무소에서 목숨을 다함

 

  =>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과 독립운동가들의 불굴의 의지가 교차하는 곳으로 그 역사적 의의가 깊은 장소

 

     1988년 11월 5일부터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재개장, 1992년부터는 서대문구 현저동에 위치한 독립공원의

     주요시설로 기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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