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수행전통 어떻게 세계화할 것인가: 로버트 버스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5-10-21 15:13 조회261회 댓글0건본문
한국불교 수행전통 어떻게 세계화할 것인가
권두기획 / 로버트 버스웰 특별강연
1부 한국불교의 수행 전통은 얼마나 특별한가
안녕하십니까. 저는 혜명이라고 합니다. 태국에 있을 때, 중국에 있을 때는 다른 이름이었는데 한국에서는 혜명으로 부릅니다. 제가 한국에 처음 온 것은 1974년입니다. 당시 저를 김포공항에서 마중 한 분은 송광사 서울 분원 법련사 주지 현호 스님이었습니다. 저는 현호 스님의 안내로 송광사로 내려가 수선사에서 석 달 동안 겨울 안거를 하면서 한국불교를 체험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 저는 19세 때 태국에 가서 사미계를 받고, 20세 가 될 때 비구계를 받았습니다. 그때는 담마유트(Thammayut) 종파에 입산했습니다. 담마유트는 계율을 엄하게 지키는 종파였습니 다. 저는 그것이 승려 생활을 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습 니다. 출가자는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지, 사람들과 같이 지내는 방 법을 배우기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그 무렵 저는 항상 아팠습니다. 아침마다 거리에 나가 탁발해야 하는데 아프니까 힘들었습니 다. 그래서 홍콩으로 가서 조그마한 암자에서 지냈습니다. 중국 스님 밑에서 수행했는데 그때 한문을 배워서 그분과는 필담으로 의사 소통을 했습니다. 저는 서너 시간씩 그 스님과 불교 경전을 한문으로 읽었습니다. 덕분에 제가 처음으로 한국에 왔을 때는 필담으로 얘기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한국에 오게 된 것은 태국에 있을 적에 한국 스님 두 분을 만 난 것이 계기였습니다. 한 분은 거해 스님이었는데 그 분은 영어를 잘했습니다. 같이 오신 분은 영어는 잘하지 못하고 조용한 분이셨는데, 그분이 바로 일타 스님이었습니다. 두 분은 태국으로 순례를 위해 오신 것이었습니다. 그분들에게서 한국불교에 관한 얘기를 좀 들었습니다. 한국에는 산속에 사찰도 많고, 공부하는 스님도 많고, 대중 생활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홍콩에 1년쯤 있다 보니 한국불교를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왔던 것입니다.
당시 송광사는 처음으로 총림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구산 스님이 방장이었는데 스님께서 허락해 주셔서 수선사에서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송광사는 여러분도 알다시피 고려시대의 지눌 스님이 수선 결사를 하던 곳입니다. 절 곳곳에는 국사전, 부도탑과 같이 그분의 존재를 느낄 만한 흔적이 많았습니다. 구산 스님은 저에게 지눌의 저술을 읽도록 권하셨습니다. 저는 한문을 조금 읽을 수 있었기 때 문에 지눌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저의 학자로서의 경력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오늘 아침 문광 스님이 말씀하신 것 처럼, 여러분도 지눌이 한국불교 전통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해 더 많이 배우게 되는 기회를 얻었으면 합니다.
저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 간화선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태국에서 공부를 시작한 까닭에 니까야 경전에만 관심이 많았 습니다. 따라서 선 관련 문헌을 읽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10대 시절 불교보다는 우주가 어떻게 생성되고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연구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수학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저는 절대 천문학자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대신에, 삶에 대한 큰 질문이 생겼습니다. 아까 정목 스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을 해치지 않으면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 무렵, 그러니까 고등학교 2학년 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은 적이 있는데, 저는 그렇게 은둔해서 살면 다른 이들을 해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불교는 제가 16세쯤 되었을 때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것은 아주 단순한 사성제나 팔정도 같은 것들이었는데, 그때 바로 불교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자신을 불교도라고 여겼습니다. 제가 불교에서 특히 흥미롭게 생각했던 점은, 종 교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는 실질적인 수행법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좋은 사상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는 실천이 있다는 것이었죠.
저는 냐나포니카라는 분이 쓴 《불교 명상의 정수》라는 책을 읽고 ‘아, 이게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이구나. 나는 이걸 하고 싶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태국으로 갔습니다. 태국에 있을 때는 빨리어를 공부했고, 몇 년 동안 중국어도 공부했습니다. 저는 경전 읽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경전을 읽는 것이 제 수행을 안정시키는 데 정말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제 스승님들께서는 계속해서 교리는 내려놓고 명상에만 집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 항상 교리와 수행, 교리와 명상 사이에서 긴장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제가 수행에서 진전을 이룰 때마다, 항상 그 수행을 교리를 통해 설명하려는 방향으로 끌려갔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것은 제게 좋은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유(머리로 이해된 것)와 수행 사이의 연결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송광사에 있을 때 봄과 가을, 해제 철에는 문수전으로 내려가서 한국불교에 관한 책들을 공부하고, 겨울과 여름 결제 철에는 수선사로 올라가서 수행했습니다. 이 시기에 저는 지눌의 저서들을 상당히 집중해서 읽었습니다. 마침 구산 스님께서 저에게 지눌의 모든 저작을 영어로 번역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격려하셨습 니다. 저는 이 작업이 정말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지눌이 제가 겪고 있는 문제들과 비슷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는 부처님의 마음과 부처님의 말씀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를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저 또한 그러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지눌의 흥미로운 점은 그의 수행 개념이 어제 월암 스님께서도 말씀하셨던 ‘공적영지(空寂靈知)’라는 개념과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공적영지에 대한 생각이 중요합니다. 물론 이것은 규봉종밀(圭峰宗密)과 청량징관(淸凉澄觀)으로부터 나온 개념이고 모든 유정(有情)에 공통적인 인식의 요소입니다. 그렇다면 영지(靈知)란 무엇인가요? 그것은 우리가 주변 세상을 인식하는 사실, 즉 우리가 세상에 대해 인식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 아이디어는 아마 초기불교 자료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앙굿따라 니까야를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오 비구들이여, 마음은 밝고 빛나지만 외부에서 오는 번뇌(klesa)와 수번뇌(upaklesa)로 더러워집니다.(pabhassaraṃ idaṃ bhikkhave cittaṃ.)”
여기서 말하는 밝고 빛나는 마음이 영지(靈知)와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초기불교에서는 이런 개념(靈知)이 있긴 있는데, 주류 경전에서는 제외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마도 훗날 편집자들이 경전에서 제외시킨 것 같습니다. 이 개념은 인도의 초기 대승불교 자료들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이는 《팔천송반야경》과 같은 경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나온 인용문은 이렇습니다.
사고의 본질은 투명하게 빛나는 것이다.
이것은 공 사상과 관련된 이야긴데, 이러한 개념도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여래장(Tat- hāgatagarbha)입니다. 여래장은 마음이 본래 빛나고 맑으며 순수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무지는 단순히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되며, 이는 왜곡된 인식, 즉 잘못된 자아에 대한 인식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만약 그 잘못된 인식을 제거할 수 있다면, 마음의 본래 밝고 맑은 상태를 회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여래장 사상이 말하는 것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깨닫지 못한다고 생각하 는 것을 멈추기만 하면, 자연스러운 깨달음이 다시 나타나리라는 것입니다.
이 여래장 사상(Tathāgatagarbha doctrine)은 신령한 지각(numi- nous awareness)이란 개념이 발생하게 된 여러 가지 흐름 중 하나 입니다. 이 용어는 중국말로 인도에서는 이 단어를 찾을 수 없습니다. 중국에서의 출처는 위경으로 알려진 《수능엄경》으로, 특히 종밀의 저술에서 많이 보입니다. 그리고 지눌도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게 됩니다. 제가 말한 영지(numinous awareness)는 바로 인식과 같습니다. 그것은 주변 세상을 감지하는 능력인데, 이 인식이 하는 일은 인지 영역을 밝게 하여, 보고, 듣고, 만지는 등의 감각기관들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는 임제(臨濟)에게서도 같은 점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생생하게 밝히고, 세상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본성의 빛은 단순히 감각기관에만 비추어져 사물을 보이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그 빛이 너무 밝아져 실제로 물체들을 통과하여 모든 것에 내재된 공성(空性)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것은 마치 아주 밝은 탐조등과 같아서 만약 탐조등을 손에 대면 손등에 뼈와 혈관도 볼 수 있듯이, 마음이 매우 밝아지면 사물들을 투과해서 볼 수 있게 됩니다. 이 마음의 빛, 즉 영지는 여러분의 모든 감각을 통해 빛을 발하고, 주위 세상을 밝히고 그것을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만약 그것을 자신에게 돌릴 수 있다면, 여러분의 본래 성품에 빛을 비출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지눌이 말하는 회광반조(廻光返照)입니다. 반조는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인데, 저는 “빛을 돌이킨다”라고 표현합니다. 지각 작용을 자신에게 되돌려 본래의 본성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18세기에 조선의 연담유일(蓮潭有一)은 지눌의 《절요(節要)》에 대한 주석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이것이 무엇인지 아주 세밀하게 설명합니다. 즉, 반조는 곧 영지(靈知) 그 자체입니다. 영지는 밖으로 빛을 발할 뿐 아니라 동시에 자신에게도 빛을 비춥니다. 여기서는 태양과 같습니다. 태양은 빛을 내뿜어 세상을 밝히지만, 그 빛을 태양으로 돌리면 태양 자체를 볼 수 있습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반조는 자신에게 빛을 되돌리는 일종의 명상일 뿐 아니라, 모든 명상에 필수적인 자기 성찰의 요소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모든 명상은 사실상 반조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지(靈知)’와 ‘반조(返照)’의 개념은 지눌의 수행 길에 대한 설명과 연결됩니다. 매우 유명한 용어인 ‘돈오점수(頓悟漸修)’입니다. 반조는 수행에서 돈오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스스로 빛을 되돌려 비추면 자신의 본성을 깨닫게 되고, 자신이 이미 부처임을 알게 됩 니다. 이 순간에 당신은 바로 자신의 불성을 직접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눌은 《수심결(修心訣)》에서 매우 중요한 말을 합니다.
“짧은 한 순간에, 수행자가 마음의 빛을 근원으로 돌이켜 자 신의 본성을 본다(一念廻光 見自本性).”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 로 반조(反照)이고 돈오(頓悟)입니다. 돈오는 지눌의 사상체계에서 갑작스러운 깨달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그 순간, 당신은 자신이 부 처임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사실임을 알게 됩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부처임을 안다고 해서 바로 부처처럼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지눌은 돈오후에도 여전히 점진적인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 과정은 결국 두 번째 깨달음에 이 르게 되는데, 이 과정을 ‘증오(證悟)’라고 부릅니다. 증오는 깨달음의 실현이나 확인의 깨달음으로, 자신이 부처임을 아는 것뿐만 아니라, 부처처럼 행동할 수 있게 되는 단계입니다.
하지만 이 점수(漸修, 혹은 점진적 수행)는 돈오 이후에 이루어 지기 때문에, 깨달음 이전에 했던 수행과 동일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으로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깨달은 바를 드러내도록 돕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무념(無念)의 상태에서 이루어진다고 지눌은 말합니다. 저는 이것을 일종의 “온건한 갑작 스러움(moderate suddenness)” 또는 “온건한 초월주의(moderate supertism)”라고 부릅니다.
지눌은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 규봉종밀과 청량징관의 비유를 사용합니다. 마치 아기가 태어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태어난 아기의 모습은 완전한 인간이지만, 진정한 인간으로 행동하기 위해선 자라나면서 배우고 성숙해야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구원론적 수행의 묘사와 다릅니다. 돈오돈수에서는 갑작스러운 깨달음과 동시에 갑작스러운 수행이 한꺼번에 완성됩니다. 앞에서 강의했던 김종명 교수의 설명에 따르 면, 이는 실타래 전체를 단칼에 자른다는 비유와 같습니다.
지눌은 돈오돈수와 돈오점수, 그리고 여러 다른 수행 체계를 살 펴보고 이를 분석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돈오돈수가 진실하며 옳다고 말합니다. 돈오돈수는 옳습니다. 그러나 이는 현생의 관점 에서만 옳은 것입니다. 즉, 모든 수행이 동시에 완성되는 돈오돈수를 체험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의 전생을 살펴보면 이미 이전 생에서 해오(解悟)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러 생에 걸쳐 수행해 왔고, 이제 마지막 생에서 돈오돈수로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그들이 전생에서 돈오점수를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다수 수행자들에게 지눌은 돈오점수가 적합한 수행법이라고 말합니다.
지눌은 생애 후반에 중국에서 막 시작된 새로운 수행 방식인 ‘간화선(看話禪)’ 기법을 접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눌의 주요 저서인 《절요(節要)》의 끝부분에서 그는 대혜의 《서장(書狀)》 즉 그의 편지에서 여러 부분을 첨부합니다. 이때가 한국불교에서 간화선이 처음으로 언급된 시점입니다. 어제 월암 스님은 그것을 아주 잘 설명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간화선이 바로 중국 본토에서 막 발전하던 새로운 형태의 수행이라는 점입니 다. 이전 조사들의 말씀을 현대적인 수행의 화두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들, 즉 화두의 목적은 의정(疑情)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의심을 일으키는 것이죠. 이것이 제가 간화선이 질문 명상, 질문과 함께하는 명상이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지눌이 설명하는 방식에서, 간화선은 질문을 통해 시작됩니다. 예를 들어 왜 조주 선사는 ‘유(有)’라고 대답해야 할 때 ‘아니 오’라고 말했을까요? 그리고 ‘유(有)’가 정답일 때는 왜 ‘무(無)’라고 했을까요? 왜 그랬을까 질문하게 됩니다. 질문이 생기고, 뜻을 궁구하게 됩니다[參意].
“과연 그가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화두만 들고 깊이 의심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그리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며칠 동안 혹은 몇 달, 혹은 결제 기간, 혹은 전생에 걸쳐 이해하려고 노력하다가 마침내 포기합니다. 그리고 그저 단어 자체인 ‘구(句)’와 함께하게 됩니다. 그때는 그 구절을 궁구하거나 공안 그 자체를 궁구하게 됩니다[參句].
그리고 이 ‘의심[疑情]’이 하는 일은 우리가 항상 갖는 경험이 자아를 중심으로 개념화하는 경향을 깨트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의 중심적 존재로 생각하 지만, 사실은 그저 하나의 조건 속에서 다른 것들과 함께 있는 상태일 뿐입니다. 그래서 간화선이 하는 일은 바로 ‘나’라는 자아의 관점 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심’이 그 과정을 추진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초기불교와 중요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초기불교에서는 ‘니르베다’라고 불리는 중요한 단계가 있 는데, 이는 ‘환멸’을 의미하며, 한자로는 ‘염(厭)’입니다. 명상을 하는 어떤 시점에, 그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위험성, 즉 세계에 내재된 무상함과 고통을 깨닫게 됩니다. 그때 그 세계가 너무 혐오스러워져서 세상이 역겨워지고, 환멸을 느끼게 됩니다.
환멸감이 드는 것은 세상이 너무 두려워져서, 두려움에 의해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등을 돌리는 것은 곧 ‘열반’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반으로 향할 때, 그 순간 우리는 열반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열반이 아닌 것은 알게 됩니다. 어딘가에는 분명 있지만, 이 세상은 아니다. 그리고 이 것은 수행에서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간화선도 아주 비슷한 지점이 있습니다. 우리의 개념화, 자아 감각, 이해 능력에 대한 혐오감을 일으키는 단계입니다. 그리고 그 ‘의심’을 만들어 냄으로써,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 터 벗어나서 깨달음으로 향하게 합니다. 대혜 선사의 말씀에서는 이러한 과정들이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의정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다가, 한 순간 깨달음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것은 보통 돈오돈수(頓悟頓修) 접근법으로 설명됩니 다.
지눌은 돈오돈수를 경절문(徑截門)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수행을 위한 빠른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지눌 스 님께서 초기에 가르치셨던 돈오점수와는 잘 맞지 않는 부분입니다. 그는 말년에 이 새로운 간화선을 돈오점수와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 가 하는 문제로 고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의 생애 마지막에, 사실 죽음 직전에 그는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이라는 글 을 썼습니다. 이 글에서 지눌은 간화선이 어떻게 돈오점수와 맞아 떨어질 수 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책은 그의 사후에 출판되었으며, 아마도 제자 진각혜심(眞覺慧諶)에 의해 매우 많이 수정되었을 것입니다.
지눌 스님은 《간화결의론》에서 화두 참구의 두 가지 기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파병(破病)은 개념적 이해의 병폐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접근법인 파병(破病)은 참의(參意)의 과정을 완성시 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접근법인 전제(全提)는 진리에 대한 포괄 적인 표현인데요, 이것은 바로 참구(參句)를 완성시키는 과정입니다. 이 두 번째 간화 수행에서 참구는 무념의 상태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는 사실상 점수(漸修)의 요소와 같습니다. 우리는 지눌이 생 애 거의 말년에 일찍이 선호했던 수행법인 ‘정혜쌍수(定慧雙修)’ 즉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는 수행에서 간화선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눌은 아직 간화선을 자신의 사상 에 완전히 통합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간화선과 지눌의 사상을 통합시킨 것은 제자인 진각국사 혜심(慧諶)이었습니다. 혜심이야말로 간화선을 한국불교 수행의 가장 핵심적인 수행으로 만든 인물입니다. 예를 들어 혜심의 글에서 그가 지눌이 사용했던 수행 기법들이 사실상 간화선 안에 포함되어 있음을 언급하는 부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혜심은 간화선이 경절문으로 지관과 정혜를 갖추고 있다고 말합니다. 간화선은 사실상 불교 수행의 모든 요소를 아우를 수 있습니다. 가장 기초적인 수행법 에서부터 가장 정교하고 심오한 수행까지, 간화선 안에서 모두 통합되고 활용될 수 있습니다.
간화선이 한국불교 수행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것은 혜심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혜심은 이미 지눌이 그의 생애 후반기에 이룩한 사상을 기반으로 발전시킨 것이었습니다. 지눌은 비교적 젊은 나이인 55세에 생을 마감하게 되면서 그의 사상을 완성시키지 못했지만, 제자 혜심이 완성시킵니다.
이때부터 한국불교는 간화선을 중심으로 결집하게 됩니다. 그 결과로 지눌의 통합적이고 회통적인 접근법은 점차 약화되는 경향을 보이게 됩니다. 이 시기에 원나라에서 수학하고 돌아온 나옹혜근(懶翁惠勤)과 같은 스님들은 한국 불교에서 유독 간화선에 대한 강조를 두드러지게 합니다. 그렇지만 이 시기의 스님들이 간화선에 관해 이야기하는 방식은 중국이나 후대의 일본과는 조금 다른 점이 보입니다.
한국에는 중국이나 후기 일본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간화선 스타일이 있습니다. 이는 지눌의 가르침에 충실한 간화선으로, 매우 독특한 접근 방식입니다. 예를 들면 화두 수행과 관련하여 지눌은 이런 말을 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화두가 불매(不昧)하여 가려지지 않은 채 고요함 속에 있는 것을 영지 (靈知)라고 부른다(寂中不昧話頭 謂之靈知).” 그리고 또 하나는 간화선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신체 와 마음, 그리고 화두가 타성일편, 즉 하나로 융합된다(身心與話頭 打成一片)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간화선 수행 과정에서 여러분의 정체성은 화두가 됩니다. 그리고 화두에 대한 의심을 깨뜨림으로 써, 당신은 자아의식과 신체, 그리고 마음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 리게 됩니다. 태고보우가 한 일은 지눌의 존재론적인 영지(靈知)를 간화선 수행과 융합한 것입니다. 이것은 지눌이 완성시키지 못했던 방식이지만, 고려 말에 이르러 완전히 실현됩니다.
그러나 대혜는 영지라는 것을 심하게 비판했습니다. 영지는 종밀 로부터 유래하는데 이 때문에 종밀과 대혜는 절대 함께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간화선 수행자들은 이 용어를 사용하였습니 다. 그리고 이것은 임제종과 대혜 선사를 어떻게 구별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종밀은 영지가 “모든 오묘한 것의 관문”이라고 한 반면, 대혜는 영지가 “모든 재앙의 관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가 고려 후기에 볼 수 있는 것은 지눌의 독특한 존재론인 영지(靈知)와 간화선 수행의 융합입니다. 이 간화 수행은 지눌이 처음 시작했지만, 고려 말에 이르러 완전히 실현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지눌이 한국불교 전통의 모든 스님들과 사상가들 중 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중요한 인물이라 평가하는 것이 절대 과장 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눌이 말년에 쓴 《절요(節要)》는 한국불교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저서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한국불교 학자들에게 누가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인지 물어본다면, 대부분은 원효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생 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지눌의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분이 오늘날 실천하고 있는 한국불교는 원효와는 아무 관련이 없 습니다. 대부분은 지눌과 관련 있습니다. 지눌 스님의 가르침이 지금 하는 공부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중국불교나 일본불교와는 다른, 독특한 한국불교 수행 방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