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로 화형당할 뻔한 천재 수녀, 빙엔의 힐데가르트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5-07-29 12:40 조회60회 댓글0건본문
마 녀 로 화 형 당 할 뻔 한 천 재 수 녀, 빙 엔 의 힐 데 가 르 트
조민아 교수의 신간 "대화를 위한 여성신학"을 기본서로, 6주에 걸쳐 6명의 여성 신학자들이 예수회센터에서 매주 연재 강의하는 여성신학 입문 강좌가 지난 22일로 다섯째를 맞았다.
지난주(15일), 강영옥 교수가 한국 천주교회사를 고찰하며 묻혀진 한국 교회 여성 선각자들을 발굴하고 사회적 모성 리더십을 시노드 과제와 더불어 조명한데 이어, 이번 다섯번째 강의에선 유정원 교수(서강대학교 신학원)가 ‘생태영성과 여성신학’을 주제로 강의했다. 빙엔의 힐데가르트를 중심으로 한 창조 영성과, ‘살림–돌봄’, ‘쉼–나눔’, ‘가난–섬김’을 통한 영성을 고찰하고, 이를 생태 영성으로 모아 대안으로서의 여성신학을 제시한다.
창조하고 먹이고 돌보고 살피시는 하느님 어머니, 소피아
강 교수는 창조하고 살리고 돌보는 하느님의 ‘살림-돌봄 영성’을 고찰하고, 소피아 하느님 어머니를 소개했다.
“여성적 상징인 ‘지혜-소피아(Wisdom-Sophia)’는 창조하고 구원하며 세상을 성화하는 하느님을 일컫는다. 하느님은 ‘하느님-그분(남성)’일 뿐 아니라, ‘하느님-그녀’, 거룩한 지혜 자체인 어머니 소피아이며, 한없는 사랑으로 인간이 되신 예수 소피아, 돌보고 이끄시는 성령 소피아이기도 하다. 이러한 하느님은 세상에 군림하며 고립된 영광으로 다스리는 군주가 아니라, 당신의 몸을 내어 사랑으로 생명을 낳고 돌보는 어머니 하느님이다.”(조민아, ‘대화를 위한 여성신학’, 124쪽)
'St. Macrina, sister of St Basil the Great and St Gregory of Nyssa'(380). 성녀 마크리나(260?-340)는 남동생이 셋으로, 모두 당대의 교부였다. 성 대 바실리우스, 니사의 성 그레고리우스, 세바스테의 성 베드로가 회화 속 성 마크리나가 들고 있는 액자 속에 표현됐다. (이미지 제공 = 유정원)
여성과 자연에 대한 지배와 착취를 정당화한 계급, 가부장제, 그리고 교부 철학
태초의 평등하고 조화로웠던 창조는 고대와 중세를 거치며 남성 중심 가부장제와 교회 권력자들에 의해 균형이 깨지고 억압 기제를 공고화했다. 유 교수는 중세 교부 철학의 ‘영육 이원론’을 설명하며 당시 교부들의 젠더 감수성을 비판했다.
그는 “남성은 하느님 모상에서 창조되었고 이성적이며 영적 존재에 가까우나, 여성은 남성에게서 파생되어 원죄에 깊이 연루되었으며, 약하고 열등하며 자녀를 출산하는 성적-육체적 존재다. 이는 현재의 가톨릭교회의 이상과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우리의 이상은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로 남녀가 동등하나 현실은 가톨릭교회의 위계 구조가 공고하며, 남성 성직자 중심으로 권력 구조가 편재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고중세 유럽 금수저 가문 여성들의 해방구, 수녀원
고대 지중해 지역에서 전쟁을 통해 패자로 떠오른 가문들은 결혼을 통해 결속을 다지며 세력을 키워 나갔다. 이 속에서 여성은 혼인 전에는 아버지에게, 후에는 남편에게 귀속된 물건과 같은 신세였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기독교의 태동과 금욕적 수도원의 발달은 상류층 여성들에게 탈출구이자 해방구가 되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유 교수는 ‘성녀 마크리나’를 소개했다. 그에 대한 기록은 남동생이었던 당대의 교부, 니사의 그레고리우스가 편찬한 ‘성 마크리나의 생애’에 남아 있다. 마크리나는 수도자가 되기 전부터 재산을 기부하고, 남은 집과 가산을 모아 수도 공동체를 설립하였다.
고중세 시대 상류층 여성의 결혼 회피책이자 해방구였던 수녀원은 매일 기도를 하는 영적 공동체인 동시에 일상을 영위하는 생활 공동체이자, 부속 농장을 통해 고용을 창출하는 지역 공동체의 일부이기도 했다. 유 교수는 “이러한 수녀원 중 일부는 상류층 자녀를 위한 소수 정예 기숙학교로도 운영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910년 클뤼니 수도원 개혁 이후 수녀원은 고립되었고, 수녀원을 통해 이루어지던 지역 공동체와의 교류와 상생은 봉쇄되었다. 엄격한 수도 생활과 성직자의 고행과 금욕주의가 강조되는 분위기가 200년간 지속되었다.
유 교수는 “교회의 부패와 타락이 만연한 가운데 봉건 귀족들이 신흥 강자로 떠오르면서, 기독교 금욕주의는 성, 자연, 여성의 몸을 부정하고 혐오하며, 지구를 파괴하고 여성을 차별하고 수녀원을 봉쇄, 통제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힐데가르트 작, 'Six days of creation'(6일간의 창조), 1152년 추정. (이미지 제공 = 유정원)
유정원 교수는 창조 영성의 대표 인물로 힐데가르트 폰 빙엔(1098-1179)을 꼽았다. ‘창조 영성의 어머니’, ‘지혜의 누이’라 불리는 힐데가르트는 독일 라인강 유역의 베네딕토회 소속 수녀다. 그는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의 숨결로 살아 있다”고 보고, 여성과 창조 세계를 신비의 통합 안에 두었다. 그는 사춘기무렵부터 하느님의 계시를 직접 받기 시작하면서 수녀원에서 지냈다. 마녀로 몰려 화형당하지 않기 위한 ‘셀프 감금’이라 볼 수도 있으며, 수녀원에서 지내면서도 계시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보호 차원에서 금지당했다.
그는 계시를 통해 숱한 예언을 전했으며, 신학 이론을 정립하고, 수많은 기록을 남긴 신학자이자 시인, 작가, 작곡가, 화가, 교육심리 상담가, 과학자, 의사, 약초학자였다. 한마디로 중세에 보기 드문 종교와 과학과 예술 분야를 아우르는 선구적이고 실험적 활동을 만개한 '수녀원에 갇힌 천재'였다.
또한 우주 그리스도는 ‘육화 영성’으로 힐데가르트는 우주와 우주 그리스도 신학을 정립해 당대 스콜라 신학 사상의 결점을 보완하고, 인간이 지닌 신성과 창조성을 강조했다. 유 교수는 힐데가르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위대한 계시'를 소개하며 감상을 강력 추천했다.
힐데가르트 작곡 음반 표지. 오른편은 계시를 받아 적는 힐데가르트의 자화상, 왼편은 그가 그린 그리스도의 몸이 육화된 천지 창조 회화. 이 앨범은 온라인 상점에서 3만 6000원에 구매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예스24)
쉼과 나눔의 영성을 통한 가난하고 배제된 이웃과의 ‘함께 살림’
유 교수는 “‘지배하는 하느님’이 아니라 ‘어머니 같은 하느님’을 통해 살림의 영성이 드러난다”며, “여성 신학자들은 창조주 하느님의 ‘지혜’, 즉 소피아(Sophia)를 통해 성서와 전통 속에 숨겨진 여성 신성을 회복하고, 생명의 정의와 평등을 향한 길을 제시하였다. 그는 미국의 여성신학자 엘리자베스 존슨을 인용해 “하느님을 남성의 이미지로만 고착시키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쉼과 나눔의 영성도 이를 뒷받침한다. 하느님의 창조 질서에 따라 쉬고 나누는 삶, 즉 ‘희년의 영성’은 불평등한 분배와 끝없는 개발을 넘어 ‘충분함’과 ‘연대의 삶’을 실현하는 지혜다. 이는 힐데가르트가 말한 “하느님의 창조에 맞는 삶”과도 맞닿아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서 중심 가치는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는 삶’이었다. 이를 ‘가난–섬김’의 영성으로 풀어낸 여성 수도자들은 섬김이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가난한 이와 함께 고통받고, 연대하며, 그들의 삶을 존중하는 것”임을 상기시킨다.
오늘날 JPIC 활동으로 이어져
유 교수는 "현대 여성 수도자들은 JPIC(정의·평화·창조 보전) 활동을 통해 탈핵 운동, 생명 운동, 기후위기 대응 등의 실천을 이어 가고 있다. 이는 ‘하느님의 집, 세상’이라는 관점에서, 피조물 모두의 생명을 존중하는 신앙 실천이기도 하다"고 전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와 '모든 형제들'도 여성신학적 실천과 깊은 공명을 이룬다. 교황은 “공동의 집을 지키기 위해 영적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여성의 몸, 자연, 영혼의 회복을 위한 생태 영성
"기존 기독교 내의 여성 혐오적 전통과 금욕주의를 넘어서, 새로운 창조 영성은 “여성의 몸과 자연, 그리고 일상의 삶”을 하느님의 자리로 되돌려 놓는다. 여성 신학은 단순히 여성만을 위한 신학이 아니라, 무너진 생명 질서와 파괴된 생태계를 위한 보편적 회복의 길이다. “여성의 몸은 하느님의 형상이며, 피조물과 함께 하느님의 숨결을 나누는 존재다. 그 숨결로 우리는 새로운 생명의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유 교수는 강조했다.
질의 응답 시간엔 한층 뜨거운 호응이 표출됐다.
“수녀님들이 세상을 바라보고 실천하는 삶을 보면 우리가 하는 노력은 1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일상에서 더 많은 생태 활동 참여가 필요하다”, “크라운 맥주를 좋아했는데 심층수를 끌어 올려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구 환경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끊었다”, “소피아 하느님 어머니에 대한 영지주의 이단 공격에 대해 잠언서를 중심으로 성서적 근거를 제시해 논박할 수 있다”, “생태적 회심은 수도 공동체 안이라면 자기 성찰적 성격이지만, 수도 공동체 밖에서라면 일반에 대한 비난으로 읽힐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딸을 키우면서 젠더 감수성과 기후 생태 운동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분법이든 다분법이든 위계질서를 직시하고, 다양성을 인정해 차이 안에서 자신다움을 발현해야 한다” 등등의 의견과 답변이 나왔다.
유정원 교수는 “생태 영성과 더불어 에코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지만, '찬미받으소서'조차도 인간 중심 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사물, 환경 등 생태적 삶을 더욱 고민하고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정리했다.
가톨릭앨라이아르쿠스, 신앙인아카데미, 예수회인권연대연구센터, 예여공, 우리신학연구소가 공동 기획한 여성신학을 위한 입문 강좌 ‘대화를 위한 여성신학’ 마지막 강의는 오는 29일 19시에 예수회센터(서울 신수동)에서 열린다. 온라인(줌)으로도 동시 참여 가능하다. 문의 02-2672-8342
출처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https://www.catholicnews.co.kr) 2025.07.2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