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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문화 다시 불러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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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5-10-17 11:54 조회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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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문화 다시 불러오기

김정희(가배울 이사)
1. 들어가는 말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은 마을 어귀마다 서 있던 마을 수호신이다. 약간 무서운듯한 얼굴이지만 해학적  표정이어서 무섭다기보다는 친근하다.  지금은 이 두 장승을 세워둔 마을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 글에서는 우리가 잃어버린이 문화의 현재적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이 문화가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오는 풍경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왜 그러한지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기원전 3000년 경까지 여신 문화와 여신 숭배는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이었다. 이후 신의 가부장제화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런 신의 가부장제화가 근대까지도 지배하지 않은 곳  중의  한 곳이 한반도와 동이족 문화권이다. 새마을운동 이전까지 마을 수호신으로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었던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의 장승 문화가 그 예이다. 이하에서는 『환단고기』에 근거해 장승문화의 정신세계를 살펴본다.  이 책은  강단사학에서는 위서로  간주된다. 그러나 철학적인 측면에서 읽어 보면 위서일 수가 없다. 위조하거나 모방할 수 있는 정신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기동 교수도 이러한 입장에서 환단고기를 위서가 아니라고 본다(이기동, 2021) 필자 또한 이러한 입장에서 『환단고기』 구절들을  인용히여 이야기를 풀어간다. 물론 고대 역사서이기 때문에 그 내용 모두가 사실일 수는 없으나 이는 모든 역사서가 그러하다. 진위를 가려  수용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필자는 천부경에 나오는 고대  천지인  합일 정신, 삼일 신고, 천하 대장군 지하여장군을 위시한 여신과 남신을 함께 신앙 하는 풍습과 문화 일체는 토착국 마고 나라의 유제이고 이것이 이주민  고조선으로 흡수되었다고 직관한다. 마고 나라는 우실하 교수가 옥기를  기반으로 했다고 한 고대 홍산 문화 국가였다고 본 웅녀국이다. 이 같은 의견에 대해서는 다음 호의 글에서  다루고자 한다.

1. 고대(古代) 여신문화의 보편성 

오늘날 기독교 불교 가톨릭 이슬람교 등등 모든 종교의 창시자는 남성이다. 그러나 먼 옛날 신이 여성인 시대가 있었다. 기원전 5000년 전 이전에 전 세계에 남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고대 사회에서는 모두 여신만이 숭배되었다. 고대의 여신 조각상들이 이를 말해 준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지역 곳곳에 수호신으로 남아 있는 마고 여신이  대표적인  예이다. 
세계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여신조각상은 독일 남부 슈바벤 지방의 펠스 동굴에서 2008년 9월 발굴된 조각상이다. 방사성 탄소를 이용한 연대 측정 결과 3만 2천 년 전에 제작됐다는 결과가 나왔으며, 연대 측정법의 특성을 감안하면 실제 제작 시점은 3만 5천 년 전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매머드 엄니로 만들어진 6㎝ 높이의 이 조각상은 가슴 부분이 커다랗게 부각돼 있는 데다가 성기로 여겨지는 부분도 두드러지게 조각돼 있어 다산이나 풍년을 기원하는 일종의 상징물로 여겨진다. 이는 이 조각상을 발견한 튀빙겐대학 니콜라스 콘라드 교수와 연구진의 설명이다 ('35,000년 전 비너스 조각상 獨서 발견돼', https://naver.me/IGJjWZ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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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https://share.google/zF3RrIodklD94ezOc 
홀레 펠스의 비너스 ⓒ위키피디아

고대에 이같이 여신이 보편적이었다는 것은 여성이 출산을 하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이  고고학자들의 일반적 인식이다. 여신은 풍요와 다산을 상징했다. 우리 조상인 동이족 여신은 중국 내몽고 홍산문화 후기(B.C. 3500~3000)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우하량 유적 그 가운데 제1지점에서 단독의 여신 신전인 '여신묘(女神廟)'( 남북 18.4~22m미터, 동서 2~9m,  남쪽의 단독 건물은 6m×2.65m)에서 발견된다.

여신묘에는 흙으로 만든 여신들을 모셨다. 여신묘의 한가운데 주실(主室)에는 실제 사람의 3배에 달하는 흙으로 만든 여신상이 있었다. 서측실(西側)에는 사람 실물의 2배 크기의 여신이 있었다. 사람 실물의 1~3배의 다양한 크기의 여신 총 6~7명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 "주실에 있던 여신의 좌우에는 흙으로 만든 실물 크기의 곰(熊)과 새(鳥)의 상이 있었다. 곰은 채색한 아래턱 부분과 발, 새는 날개 부분과 발톱 부분만이 잔편으로 발견되었다. 
남쪽의 단독실 근처 제사 구덩이에서는 희생으로 바친 곰의 아래턱뼈가 발견되었다. 우하량 일대 적석총에서는 많은 '곰 형상의 옥기'인 옥웅룡(玉熊龍)이 발견되었다. 이런 여러 정황을 통해서 볼 때 홍산문화의 주 토템은 '곰토템'이라고 보고 있다. 홍산인은 곰을 주된 토템으로 하는 곰토템족인 것이다. 우실하 교수는 홍산인들이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웅녀족'이고 옥기를 기반으로 하는 고대국가 였을 것으로 본다(우실하, ‘홍산문회 우하량 제1지점 여신묘(女神墓)’,   https://naver.me/GpCnnkdy).

그런데 홍산 여신은  복부, 유방 등을 강조하여 다산, 풍요의 여신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과 달리 밋밋한 가슴에 두 손을  모은 가부좌 자세이다. 명상하는 자세이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 고도의 정신세계가 구축되어 있었다고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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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화 우하량 여신묘 여신상. ⓒ 유튜브 채널 역사광복군 '홍산 여신이  말한 비밀',https://youtu.be/NENEWjEwzA8?si=o20PiQBa5PD5q1mE 영상 캡쳐

<부도지>1장에는 '천부 (天符)를 봉수(奉守)하여 선천(先天)을 계승(繼承)하였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구절에  근거해 동이족의 가장 오래된 경전 천부경이 이 홍산문화의 정신세계를  대변한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기원전 3000년 전 전후로  남신이 나타난다.
이때의 남신은 여신의 배우자, 또는 남자 형제,  또는 아들로 여신의 조력자나 분화된  신직을 수행한다. 이러한 여신 신화는 기원전, 3~4천 년 전이 되면 창조 과정에 남신이 등장하는 신화로 대치된다. 이때는 가축 사육과 낙농의 발달로 남성의 임신 과정에서의 역할이 보다 분명하게 이해되게 되고 이것이 신화에 반영되고 있다. 
대모신은 이제 혼자가 아니라 아들이나 형제를 동반하고 나타난다. 이 단계에서는 생사를 주관하는 것은 여전히 대모신이지만 남성 조력자의 역할이 보다 분명하게 인식되며 아직까지 여신의 권능은 살아있다(Lerner, 1986:149-150). 이 단계에서 남신과 여신 간의  위계적 차별은 없다. 우리의 바리데기 신화에서 이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바리데기는 “서울전승본에서는 무조신(巫祖神)이 된다고 전해진다. 무조신이 되는 전승에서는 언월도와 삼지창, 방울과 부채를 들고 앞장서서 죽은 사람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전해진다.

영남 전승본과 전설의 고향 '바리데기의 전설' 편에서도 바리데기는 십팔지옥을 다녀오며 본 인간의 고통을 보고 큰 깨우침을 얻었으며, 인간들이 죽었을 때 올바른 사후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저승을 지배하는 신이 되었다고 한다. "바리데리를 따라 아들 일곱을 데리고 이승까지 따라온 무장승의 경우 산신제의 평토제(위령제)를 받게 되었다 하니 일종의 산신으로 좌정한 것으로 보이나 확실한 직분은 나오지 않는다. 자료에 따라 마을 어귀에 세워지는 장승이 되어 평토제수(平土祭需)를 받아먹고살게 된다고도 한다. "바리공주의 아이들에 대해서는, 무장승의 일곱 아들 버전에서 일곱 아들은 “저승 시왕(열 명의 저승 판관)의 자리에 올랐다고도, 하늘에 올라 칠성신이 되었다고도 한다(‘바리공주’ https://namu.wiki/w/%EB%B0%94%EB%A6%AC%EA%B3%B5%EC%A3%BC).

바리데기 신화에서 보듯, 신직에 남신 중심의 위계적 차별은 없다. 무장승이 장승, 곧 천하대장군이 되었다는 것은 이 신화가 기원 전 형성된 신화임을 말해준다. 『환단고기』에는 장승 문화가 환국 시대의 문화로 기록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리데기 신화에서 나타나는 불교적 색채는 후대에 가미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지역마다 가부장제화의 경로가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기원전 3천 년 이후가 되면 가축 사육을 통해 생식에서의 수컷의 역할이 분명하게 인지되고 전쟁이 범람하는 철기 시대가 도래하면서 사회는 남성중심 사회로 변모한다. 신화에는 이러한 변화는 여신의 추락과 남신의 권위 부상으로 재현된다. ‘어머니-여성’ 여신은 격퇴되고 왕과 같은 막강한 권력을 갖는 남신들(Man-God Kings)이 나타난다. 생명의 근원은 더 이상 자궁이 아니라 음경이 된다. 여성의 음문, 유방 조각으로 여신의 권위를 나타내던 문화는 사라지고 음경 조각․기둥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그러나 여신 숭배의 오랜 관습은 일격에 격퇴되지는 않는다. 왕 또는 남신은 종래의 대모신 숭배의 관습을 자신의 권력 유지에 이롭게 활용하면서 유지시킨다(Lerner, 1986:38-43).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지혜의 여신인 메티스가 제우스를 피해 파리로 변신하나 제우스에게 먹혀 사라지고 구약에는 여신은 사라지고 ‘하나님 아버지’만 남게 된다.

3.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의 정신세계

 『환단고기』 <태백일사>에는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은 천하에 두루 계시는 오제, 곧 다섯 임금의 사명을,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은 지하에 두루 계시는 다섯 성령을 주관한다고 한다(『환단고기』 태백일사 제1 太白逸史 第一 삼신오제본기 三神五帝本紀:301).
삼신은 다섯 방위의 주재자인 오제五帝를 통솔하여 저마다 그 맡은 바 사명을 두루 펴도록 명령하고, 오령五靈에게 만물 화육의 조화 작용을 열어서 공덕을 이루게 한다. 오제와 오령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아래와 같다.

"오제五帝는 흑제黑帝와 적제赤帝와 청제靑帝와 백제白帝와 황제黃帝이시다. 
흑제는 겨울의 엄숙한 죽음을 주관하시고, 적제는 여름의 빛과 열기를 주관하시고, 청제는 봄의 낳고 기름을 주관하시고,
백제는 가을의 완성과 성숙을 주관하시고, 황제는 하·추 교역기에 균형과 화합을 주관하신다."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다섯 성령[오령]은 태수太水와 태화太火와 태목太木과 태금太金과 태토太土이시다.
태수는 영윤榮潤(번영과 윤택함)을 주관하시고, 태화는 용전(鎔煎,주조)을 주관하시고,
태목은 영축(營築,건축)을 주관하시고, 태금은 재단(裁斷,마름질)을 주관하시고,
태토는 가종(稼種, 농사와 곡식)을 주관하신다."
천하대장군은 오제(五帝)의 사명을 주관하고 여장군은 오령을 주관한다(앞글:301). 

따라서 천하대장군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4계절 변화를 지하여장군은 살림의 번영과 윤택함,제련ㆍ제철,건축, 실과 옷감짜기, 농사와 곡식  갈무리와 저장 등 일체 살림을 주관한다. 이는 우리 선조들은 마을 어귀에 천하대장군을 세워 놓음으로써 춘하추동의 변화를 주관하는 천지 자연의 은혜에 감사하고  또한 이 천지 자연이 우리를 보살펴 주기를  기원하였음을 말해 준다. 
한편 지하여장군에게는 우리가 생계를 위해 하는 일체의 살림 활동을 원만히 이루어지게 비는 마음을 담았음을 말해 준다.  천지 순환의 섭리를 주관하는 신령한 기운을 천하대장군으로 살림 경영을 주관하는 신령한 기운은 천하여장군으로 상징하였던 것이다. 여기에는 위계적으로 절대 권능을 갖는 제우스나 하나님 아버지 같은  절대권능을 갖는 남신은 없다. 대장군과 여장군의 상보적 권능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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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위키피디아

음양 상보적 사고는 『노자』42장에 잘 표현되고 있다.
萬物 負陰而抱陽 沖氣以爲和(만물 부음이 포양 충기이위화)(『노자』42장)
만물은 음(陰)을 짊어지고 양(陽)을 안아서 충기로 조화를 이룬다. 

양 기운, 음기운 그 어느 하나만으로 이루어지는 존재는 없다. 만물은 음양 조화의 기운으로 이루어진다. 마을 수호신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도 이러한 사유를 담고 있다. 화순 운주사의 부부 와불, 안성 쌍미륵사의 남미륵과 여미륵, 마을 입구에 있던 선돌 할아버지와 할머니, 조ㅅ바위(또는 공알바위) 주변에 함께 있는 보지바위가 다 이러한 음양 상보적 사고의 연장선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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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작천면 교동마을, 선돌 할머니 ⓒ김정희

최치원의 낙랑비서는 전문은 전해지지 않고 삼국유사에 그 일부 서문만 전해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崔致遠鸞郞碑序曰, 國有玄妙之道, 曰風流, 設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羣生, 且如入則孝於家, 出則忠於國, 魯司寇之旨也.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諸惡莫作, 諸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삼국사기(三國史記)』권4, 「신라본기(新羅本紀)」4 진흥왕(眞興王) 37년)(최치원 "난랑비(鸞郞碑) 서문에 이르기를, "나라에 현묘(玄妙)한 도가 있는데 풍류(風流)라 한다. 가르침을 설파하는 근원은 선사(仙史)에 상세히 갖춰져 있는데 실로 삼교(유교, 불교, 도교)를 포함한다. 군생(羣生)을 접화(接化)하는 것이, 들어가면 집에서 효도하고 나가면 나라에 충성하는 것과 같으니 노(魯) 나라 사구(司寇)(공자: 필자주)의 뜻이다. 무위(無爲)의 일에 처하여 말로 하지 않는 가르침을 행하니 주(周) 나라 주사(柱史)(노자: 필자주)의 근간이다. 모든 악을 짓지 아니하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축건(竺乾) 국의 태자(부처: 필자주)의 교화이다."

이 서문에 따르면 우리 선조들에게는 유불선을 합친듯한 풍류도의 신앙 혹은 정신세계가 있었다. 『환단고기』에는 노자의 아버지 한 건이 동이족인 풍족으로 나온다. 노자가 동이족이었다는 말이다.

“계미(단기 1816, BCE 518)년에 노나라 사람 공자孔丘가 주나라에 가서 노자 이이李耳에게 예禮를 물었다. 이耳의 아버지는 성이 한韓이고 이름이 건乾인데, 선조는 풍이족 사람[風人]이다. 노자는 후에 서쪽으로 관문을 지나 내몽고를 경유하여 여기저기 전전하다가 아유타阿踰佗에 이르러 그곳 백성을 교화하였다.”(『환단고기』 「삼한관경본기」)

노자의 성이 이 씨인 것은 초나라의 노자 이이(李耳)는 한(韓)씨이지만, '내가 동방 사람이다'라고 해서 동방을 뜻하는 목(木)에다 아들 자(子) 자를 써서 성씨를 이(李)로 바꿨다는 설과  오얏나무(李木) 아래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오얏나무를 상징하는 이(李)가 그의 성이 되었다고 하는 설이 있다(https://chinesewiki.uos.ac.kr/wiki/index.php/%EB%85%B8%EC%9E%90;
노자는 동이족이다’.https://youtu.be/JcmtlJvCvXc?si=QS4XALpmfyiElyH5 ).

이같이 음양상보적인 신관 속에서는 여신과 남신은 각각의 고유한 직분과 권능을 가지며 공존한다  권능에서의 위계가 없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 마을 어귀에 있음으로써  이러한 여신 남신의 상호 공존은 사람들의 집단 무의식이 된다. 이러한 집단 무의식에서는 일베와 같은 여성 혐오적인 정신이 자리 잡을 여지가 없다 이것이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 가지는 정신사적 의미이다. 조선 후기 음양존비로 이데올로기화된 유교가 지배하더라도 서민의 정신세계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 서민의 정신세계는 여전히 선조들의 음양상보의 만물평등의 정신세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조셉 캠벌, 빌 모이어스는 상징과 신화가 대중의 삶을 도덕적으로 지탱해 주는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대중은  언제나 자신들의 상징을 문자 그대로  해석함으로써 도덕과 화합, 활력, 창조력을 얻으며 그러지 못하면 불확실성과 불안정 상태가 따른다. 왜냐하면 삶은 환상에 의해 뒷받침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환상을 잃으면 믿고 의지할 확실한 대상과 도덕률도 함께 사라진다. 백인 문명이 뒤흔들어놓은 원시공동체가 바로 그렇게 됐다...
현대 과학이 과거의 신화에 의거하는 터부를 뒤흔들어놓는 지금, 문명세계 곳곳에서 악덕과 범죄, 정신질환,  자살, 약물중독, 가정파괴,  무례한 아이들,  폭력, 살인, 절망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우리 문명을 뒷받침하는 신화를 우선할 것인가,  아니면 '사실에 의해 증명된'  과학을 우선할 것인가?  양자는 모든 차원에서 대립하는가?  환상과 진리의 갈등을 초월해 사람들의 삶을 다시 추슬러줄 지혜는 없는가?”(조셉 캠벌, 빌 모이어스, 2017: 21~22)

여기서 신화는 고대의 정신으로 바꿔도 무방하다.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담고 있는 내용은 신화라기보다는 철학적 사유의 색채가 짙은 정신이다. 그 형상은 상징이다. 공동체가 공유하는 상징은 그 공동체의 집단 무의식이다. 아파트 입구에 천하대장군과 천하여장군을 세워놓고 말을 알아듣기 이전의  혹은 어설프게 알아듣기 시작한 아이에게 부모, 할머니나 할아버지, 어린이집 선생님이 오가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돌아오며 오게 해 주시는 천하대장군, 엄마•아빠가 하는 일, 농부님의 농사, 과학자의 발명, 회사와 공장에서 일하시는 아저씨와 아줌마들의 일을 잘 되게 해 주시는 지하여장군이시란다”라고 말해주는 세상을 상상해 보자. 
거기에 일베 나 그루밍 성폭력과 같은 문화가 들어설 여지는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애순이와 관식이처럼 서로를 진정으로 위해주는 문화가 있게 된다. 상징을 종교가 아니라 문화로 이해하면 어떤 종교와도 충돌하지 않는다. 이미 우리는 일부 광신도와 그 종교를 제외하고는 기독교인이 스님 법문을, 불자가 신부님 설교를 자유롭게 유튜브에서 듣고 보고 있다. 천주교인 가족이 고인이 된 가족의 49재에 거리낌 없이 참여한댜. 이 또한 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 문화의 자장 속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이제  천하대장군, 천하여장군의 본연의 자리를 찾아주자.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 있는 곳을 방문하면, 이 두 신의 의미를  아이들에게 소상하게, 재미있게 설명해 주자. 두  장군은 상생의  수호신 무의식이 되어 그 아이들의 영혼은 강건하고 편안한 평화가 될  것이다.

참고 자료

1. 원전
『환단고기』, 2012, 상생츨판.
감산, 1990, 『감산의 노자풀이』. 

2. 저서
조셉 캠벌.빌 모이어스 대담, 이윤기 옮김,  <신화의 힘>, 2017:314  The power of  myth,  1991, Joseph Campbell, Bill Morers, Doubleday Lerner, Gerda, The Creation of Patriarchy, New York:Oxford University, 1986.

3. 인터넷 자료
-이기동(2021) ‘환단고기는 위서가 아닙니다’,  https://youtu.be/GUzZv04CSyQ?si=70OJCpsONWQS-UuO). 
-'35,000년 전 비너스 조각상 獨서 발견돼', 2009, https://naver.me/IGJjWZCC
-우실하, ‘홍산문회 우하량 제1지점 여신묘(女神墓)’, https://naver.me/GpCnnkdy
-‘바리공주’ https://namu.wiki/w/%EB%B0%94%EB%A6%AC%EA%B3%B5%EC%A3%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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