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송 41번: 죽음은 곧 삶의 이해. 죽음은 수행의 문이다 > 초기 경전


초기 경전

초기 경전

게송 41번: 죽음은 곧 삶의 이해. 죽음은 수행의 문이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5-08-05 22:03 조회31회 댓글0건

본문

담마빠다 with 선일스님


41. 고약한 냄새가 나는 띳사 테라이야기

 

"아, 머지 않아 이 몸은 땅위에 눕혀지리라.

의식은 떠나고, 버려진 이몸은

마치 쓸모없는 나무토막처럼 되리라."

 

-병든 비구 띳사에게 붓다께서 직접 몸을 닦고 옷을 씻어서 입히고, 붓다께서 위의 설법을 함,

띳싸는 아라한과를 성취한 뒤, 곧바로 열반에 듦. 붓다께서 직접 장례를 치르고 유골로 사리탑을 세우심

 

.puti-썩은, 악취가 나는, gata-가다. => 뿟띠갓따 띳사 빅쿠= 썩어가는 띳사비구

.시방- 동서남북+사위(동서, 서남, 남북, 북동)+위아래,:.시방 삼세 -열개의 방향 + 과거 현재 미래의 세계 => 온 우주의 시공간

.간다(ganda 작은) 꾸띠(kuti, 향) =깨달음의 향기가 나는 붓다께서 머무신 방

 

*띳사 비구의 전생 이야기

.과거 새사냥꾼이며, 새를 잡아서 날지못하게 다리와 날개뼈를 부러뜨린 후에 새를 팔아 생계를 이어감

.아라한스님께 공양하며 발심(발원: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세움)을 함.

"저도 부처님의 가르침의 극치에 도달하기를 원합니다"

-아라한스님이 수기를 줌, 아라한에게 공양한 공덕으로 아라한과를 성취함

 

.kalingaram 낄링가람 -죽은 나무조각, 시체의 비유로 사용됨(쓸모없는 물건), 불에 태워진 뒤의 나무조각

=> 초기불교의 무상관

죽음 명상, 수행적 자각의 깊은 통찰을 함축

죽음은 필연이며,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경고, 쾌락과 고통의 이중구조에서 벗어나, 해탈로 향하는 결단을 내리게 함

 

=> 슬퍼하라는 것이 절대로 아니며,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뜻

-죽음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묘사하여, 죽음=소멸=무의미라는 등식으로 오해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가능함

-그러나 자아에 대한 환상을 부수는 유익한 비판으로 받아들여져야 함

-몸이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존엄의 상실이 아니라), '식과 결합되지 않은 몸'에 대한 집착 해체를 유도

-식은 단지 하나의 조건 요소일 뿐, 그 식도 또다시 새로운 태어남의 조건을 만듬(예: 재생 결합-rebirth linking consciousness)

 

.죽음은 수행의 문

-무상고무아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는 순간 

-죽음을 자각하면 집착은 약해지고, 지금 이 순간의 삶이 더 선명하게 깨어있게 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진실을 향한 수행의 시작점이다.

 그래서 죽음을 기억하는 자만이 참되게 살아갈 수 있다. 방일을 끊고 정진을 부르는 '수행의 거울'이다.

 

.죽음은 확실하다 시간은 불확실하다. 몸은 의지할 수 없다. 

죽음을 안다는 것은 삶을 아는 것이다. 죽음은 수행의 문이다.

 

.죽음이 곧 삶의 이해이다

의식이 없으면 몸의 주체가 없다. 의식이 없는 몸은 무가치하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닥친다. 

언제 올지 모른다. 의식이 떠나면 단지 장작더미일 뿐

 

.'아픈 병자'를 돌보는 것은 '붓다께 시중드는 길'

나를 시중드는 자라면, 병든 이도 돌봐야 한다.

만약 돌볼 은사도, 스승도, 사미도, 제자도, 같은 은사나 같은 스승을 둔 비구도 없다면, 그는 승가에 의해 돌봐져야 한다.

만일 승가마저도 돌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도덕적 과실이라는 "계율 위반"이다.

 

* "마라나사띠(죽음에 대해 깨어있음)수행

-아침과 저녁 , 하루에 한 번이라도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는 수행에 게으른 자이다.

-하루에 여덟번이라도 죽음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는 '방일한 자'이다.

-반면에 어떤 비구가 밤낮에 여러 번 죽음을 기억한다면, 그는 진정 '방일하지 않고 살아가는 수행자'라고 말할 수 있다.

 

몸은 나무토막과 같다는 무슨 뜻인가?

-죽은 몸, 의식이 떠난 육신,쓸모없는, 태워지지 않는 나무 덩어리, 화장에도 쓸수 없는 젖은 나무

-영원한 자아라는 착각에서 벗어나게 하련느 수행적 전략, 존재의 실사응ㄹ 뚫어보게 하기 위한 비유적 충격요법

-죽음을 의식하는 것은 죽음을 미리겪는 것이 아니라 삶을 더 깊게 살아가고자 하는 수행

 

*부처님은 왜 몸을 무가치한 나무토막에 비유했을까?

-죽음 이후의 몸은 더이상 주체가 아님, 수행의 도구도 아님 단지 의식없는 물질일 뿐

-몸에 대한 집착을 내려놔라, 몸을 숭배하지 말고 수행의 도구로 삼으라

 

'의식없는 몸은 아무 가치가 없다는 표현은?

-몸은 수행의 임시 거처일 뿐, 몸을 객관화하여 평정심을 키울 것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나도 아니며,

나의 자아도 아니다.

그저 흙, 물, 불, 바람의 모임일 뿐이다."

 

*32가지 신체 부위에 대한 관찰

: 이 수행법은 무상, 고, 무아, 혐오의 통찰을 증장시키고, 욕망을 줄이며, 몸에 대한 집착과 애착을 끊는 데 목적이 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종교와 젠더연구소서울 중구 동호로24길 27-17 우리함께빌딩 3층Tel. 070-4193-9933Fax. 02-2278-1142

COPYRIGHT ⓒ 종교와젠더연구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