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법에 따라 국가와 사회조직이 운영되고 인간관계가 규율되는 법치국가에서 법령과 그에 따른 판례의 형성과 변화는 성별에 따른 사회적 지위와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여성신문은 법을 여성과 젠더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성평등의 실현을 위해 활용할 수 있도록 [젠더법 강좌]를 연재한다. 1부는 법과 젠더 및 성평등의 관계, 2부는 한국젠더법제사, 3부는 젠더법의 현황, 4부는 젠더판례를 주제로 한다.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연합뉴스

[젠더법 강좌]는 지난 7월 25일부터 12월 12일까지 20회에 걸쳐 매주 “한국젠더법제사”를 연재했다. 이 연재의 취지는 우리나라에서 여성과 남성 등의 성별(젠더)과 성평등에 관한 법이 어떠한 배경으로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했는지 파악하는 것과 이를 바탕으로 법의 현황과 문제를 진단하고 성평등 사회를 이루는 법을 만드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에 있다.

젠더법의 형성과 변화의 주된 요인  

우리나라 젠더법은 다음과 같은 여건에 크게 영향을 받아 형성, 진보, 퇴보해 왔다. 

성평등에 관한 국제적·국내적 시대 상황

첫째, 젠더법은 UN의 ‘성평등(Gender Equality)’ 정책과 활동에 크게 영향을 받아 형성, 변화되고 있다. 세계평화와 인류 번영을 위해 1945년에 설립된 국제기구인 UN은 세계 인구의 반수를 차지하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철폐하고 모든 사람이 성별에 관계없이 동등하게 인권을 보장받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하고 있다. 그 실현을 위해 성별에 따라 기질·능력·역할을 구분하는 전통적 인식을 탈피해 개인의 적성과 능력 및 선택에 따라 모든 사회 영역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것, 임신·출산·육아 등의 돌봄과 사회생활을 조화롭게 양립하는 것, 성별에 따른 생리적 차이와 사회참여의 차이를 고려해 형평을 이루는 것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행동강령과 협약을 마련해 국가들에게 이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UN은 성평등의 실현은 성별의 실질적 평등과 상생 발전 및 평화를 이루고 나아가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이룬다고 강조한다. 현재 UN에 가입한 국가의 수는 190개가 넘고 가입국 대부분이 UN이 채택한 ‘여성차별철폐협약’에 비준했다. UN의 전문기구인 ILO(국제노동기구)는 노동과 사회보장 부문에서 각 국가의 성평등 관련 법과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해 성평등은 국제질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국제적 동향에 따라 법과 정책을 정비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젠더법의 형성과 변화는 당시의 국내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인 시대 상황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대통령 등 입법·사법·행정 주역들의 성평등 의지와 실천 

입법·사법·행정의 주역들(대통령, 장관 등 고위 공무원, 의원, 재판관 등)은 권한과 전문성을 가지고 법과 정책, 판례와 결정례 등의 형성과 변화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데 대통령에게 국가를 통치하는 중요한 권한을 집중적으로 부여하기 때문이다. 젠더법의 형성과 변화도 대통령의 성별에 관한 인식과 성평등을 실현하려는 의지와 실천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에 따라 여성정책 또는 양성평등 정책을 전담하는 행정조직과 소속 공무원들의 성평등 인식 여하도 중요하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젠더법 강좌]는 젠더법제사의 시대구분을 젠더법의 발아기였던 건국시대와 제1·2공화국 시대를 제외하고는 10명의 대통령(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의 통치시대로 구분했다. 

피해자들과 여성주의 활동가들의 연대 투쟁   

젠더법이 정부와 국회가 먼저 주도해 이뤄진 경우는 거의 없다. 젠더법의 형성과 변화에는 젠더문제의 피해자들과 여성주의 활동가들의 연대 투쟁이 늘 있었다. 피해자들이 여성단체나 권리구제기관에 시정을 요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에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여성주의 단체나 전문가들이 연대해 피해자를 돕고 문제를 사회 이슈화 시키며 법정 투쟁을 하는 경우가 많다. 또는 입법안을 만들고 이를 입법화시키고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시키기 위해 거리 시위와 캠페인, 토론회 개최, 서명받기, 입법 청원 등의 다양한 활동을 했다. 이러한 활동은 성평등 실현을 위한 법의 제·개정의 성과를 얻는 경우가 많다.  

성평등 입법을 위한 의정과 연구의 활성화   

우리나라의 성평등 실현을 위한 법과 제도는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세계가 주목할 정도로 급속한 속도로 발전되고 있다. 이 배경에는 증가된 여성의원들과 국회 내 상설위원회인 여성가족위원회의 성평등 실현을 위한 의정활동, 입법조사관들의 입법연구도 있다. 또한 한국젠더법학회 등 젠더법 연구조직이 증가하고 연구자들도 증가해 성평등 입법연구가 활성화되고 있는 이유도 있다. 1983년에 세계가 유례가 없는 정부출연기관으로 설립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여성의 인권보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한 다양한 정책안과 법안, 정보를 상시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성평등에 관한 국민의 의식과 여론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입법을 추진하려면 국민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젠더법이 실효성과 인지도가 적은 이유 중에는 국민을 설득시키는 과정과 토론 없이 입법을 서두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언론의 여론 형성과 젠더법의 입법화와 시행에 관한 보도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여성신문은 1988년 12월 창간돼 지금까지 36년간 성평등 추진활동과 입법 등을 집중 보도해 입법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글쓴이: 김엘림, 출처: 여성신문 2024.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