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미맘’은 무엇을 긁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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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5-03-10 13:25 조회2회 댓글0건본문
‘제이미맘’은 무엇을 긁었나
[레드 기획]선망의 공간 ‘대치동’과 손쉬운 멸시의 대상 ‘맘’이 낳은 혐오.
‘복부인-돼지엄마-대치맘’ 계보가 드러내는 한국 사회 민낯

개그맨 이슈지가 개설한 유튜브 채널 ‘핫이슈지’에 올라온 여러 콘텐츠 가운데 ‘대치맘’을 재현한 이소담씨 콘텐츠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핫이슈지’ 갈무리
웃고 싶을 땐 이수지를 찾는다. 100번쯤 봤어도, 어제 본 거라도 상관없다. 반드시 웃고 말 테니까. 특히 ‘은혜 갚은 호랑이’ 성대모사는 볼 때마다 저항 없이 터지는 소중한 ‘웃음 버튼’이다. 이수지가 현존하는 코미디언 중 가장 웃긴지는 잘 모르겠으나 김구라의 말처럼 “지독히 잘하는” 사람인 건 맞다. 그의 성실한 관찰력이 만든 결과다. 그런 이수지가 2024년 12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이수지의 유튜브 채널 ‘핫이슈지’ 어딜 봐도 이수지는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신령님의 말씀만 전해드리는” 백두장군이 우리를 노려볼 뿐이다. 인플루언서 슈블리맘이 “우리 쑥떡이들”을 위해 공장 사장님과 싸워서 가지고 온 클로렐라 찰떡과 카레 찰떡, 붓기와 독소를 쪽 빼는 빼빼수 공구 라방(라이브 방송)을 진행할 뿐이다. 그리고 대치동에 거주하는 ‘제이미맘’ 이소담씨가 있다. “대치맘” 대신 “도치맘”으로 불리고 싶다는 소담씨는 4살 아이를 양육하는 전업주부로서 아이의 “영재적인 모먼트” 때문에 삶의 초점을 자식에게 맞춰 산다.
그의 하루는 단순하지만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 제이미가 수학 학원에 간 사이 차 안에서 김밥을 먹으며 영어 유치원 원어민 교사와 상담하거나, 제이미가 선행학습하는 문제집을 푼다. 제기차기를 가르칠 과외 선생님을 물색하여 미팅하고, 제멋대로인 아이를 인내하며 사랑으로 훈육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소담씨는 제목 그대로 “엄마라는 이름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사람이다.
“인간복사기” “현실 고증이 완벽하다”는 평가처럼 ‘핫이슈지’ 속 백두장군, 슈블리맘, 제이미맘은 어디선가 봤을 법한 인물들의 특징을 정확하게 잡아낸 것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중 제이미맘을 향한 관심이 뜨겁다. 유명 브랜드 패딩을 입고 가방을 들고 등장해 영어와 한국어를 혼용하고 “~하지 않아요”라는 등의 교양 있는 말투를 사용하는 게 해당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똑같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이수지의 풍자가 놀라움을 동반한 웃음을 준 이유는 명확하다.
대치동이라는 특정 지역과 거기에서 벌어지는 사교육 경쟁의 풍경을, 많은 사람이 막연히 떠올리는 이미지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희극적으로 재현했기 때문이다. 물론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 때도 있지만 대체로 이해 가능한 선에서 웃음을 준다. 그러나 이번에는 웃음의 끝이 묘하게 씁쓸한 이유는 무엇일까? 백두장군과 슈블리맘도 있건만 유독 제이미맘만 논란의 대상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여기에 풍자의 딜레마가 있다. 풍자는 단순한 웃음을 넘어 사회적 문제를 새롭게 주목하게 하거나 권력자들의 위선을 비판하는 강력한 도구로 사용되곤 한다. 즉, 약자들의 무기일 수 있을 때 풍자는 의미가 있다. 제이미맘은 어떤가? 선망과 욕망의 시선이 복잡하게 쏠리는 사교육 시장의 중심인 ‘대치동’을 은근하면서도 제대로 비틀었다는 면에서는 잘 만들어진 풍자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그 풍자가 특정한 사회 계층이나 성별을 희화화할 때 도리어 사회적 편견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제이미맘의 풍자가 주류 사회를 향하기보다는 개별 여성들을 향하는 순간, 약자들의 무기는 도리어 약자를 겨누는 무기가 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애먼 피해자가 생기기도 한다.
이수지 유튜브 영상에서 달궈진 불똥이 난데없이 한가인에게 튀었다. 한가인의 유튜브 채널 ‘자유부인 한가인’에 공개된 자녀 픽업 영상 속 상황과 제이미맘의 일상이 비슷하다며 논란이 생긴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한가인이 해당 콘텐츠를 비공개 처리하자 ‘이수지 vs 한가인’ 구도로 몰고 가는 여론이 형성됐다. 그러나 한가인의 대처는 ‘제이미맘’ 때문에 ‘긁힘’ 당해서가 아니다. 해당 콘텐츠에 달리는 악플들로부터 자녀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때마침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한가인이 자신이 왜 자녀 양육에 헌신하게 됐는지 해명하듯 이야기하는 장면이 방영됐다.
그럼에도 한가인을 향한 악플은 멈추지 않았다. 왜 제이미맘 때문에 한가인이 유튜브 콘텐츠를 삭제하고 방송에서 ‘엄마’로서 자신의 행동을 해명해야 했을까? 제이미맘과 한가인을 향한 과도한 관심과 논란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 특히 ‘엄마’라는 존재가 어떻게 인식돼왔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치동이라는 공간의 의미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풍자의 대상이 된 공간인 대치동은 한국 사회에서 단순한 지리적 명칭이 아니다. 부동산과 교육이 결합해 계급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고, 한국 사회 구성원의 선망과 욕망이 집중된 곳이다. 사교육이 공교육을 압도하는 이곳에서 학부모는 단순한 보호자를 넘어 교육 기획자로 기능해야 한다. 이때 여성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7세 고시’로 대표되는 선행학습과 의대와 명문대 입학을 위한 로드맵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것은 전적으로 ‘○○맘’ 즉, ‘엄마’의 몫이다. 그렇기에 대치동에 사는 여성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과 동시에 논란의 중심으로 호명돼왔다.
부동산 투기 열풍이 한창일 때는 이른바 ‘복부인’으로 불리며 논란의 중심이 됐다. 복부인이 사라진 자리에는 사교육 시장을 선도하는 ‘돼지엄마’로 등장했고,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이름인 ‘대치맘’으로 발전했다. 여성을 향한 이런 호명의 문제를 ‘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되었나’의 저자 최시현은 “과잉도시화된 수도권에서 대중이 느끼는 피로감과 상대적 박탈감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여 감정적 쾌락을 만드는 정치공학적 산물”로 평가한다. 즉, 이수지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제이미맘은 그런 호명들의 최신 버전이 된 셈이다.
‘대치동 콘텐츠’에 남성의 역할은?
여성을 향한 이런 사회적 시선은 대중문화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드라마 ‘아내의 자격’(2012년)은 ‘국제중학교’ 입시반에 들어가기 위해 시험을 치러야 하는 대치동 학원가 풍경을 현실감 있게 묘사했다. 몇 년 뒤에는 자녀를 의대에 보내기 위해 입시 컨설턴트를 고용하는 ‘스카이(SKY) 캐슬’(2018년)이 방영되어 사회적 논란이 됐다. 2025년 2월 방영돼 충격을 준 ‘추적 60분’ ‘7세 고시’ 편의 드라마 버전도 최근 등장했다.
“딸의 ‘7세 고시'를 앞둔 열혈 워킹맘 정은이 엄마 지아에게 학원 라이딩을 맡기며 벌어지는 3대 모녀의 ‘애'태우는 대치동 라이프”라고 소개된 ‘라이딩 인생’(ENA)은 대치동 학원가를 중심으로 아이 교육을 위해 경쟁하거나 분투하는 엄마들의 치열한 일상을 보여준다. 이런 콘텐츠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모든 것은 결국 ‘엄마들의 전쟁’이라는 것. 그 엄마들은 가정과 사회를 유지하는 필수적 존재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돼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남성은 어떻게 존재할까? 제이미맘이 인기를 모으자 제이미맘의 남편을 자처하는 유튜브 콘텐츠가 생겼다. 유튜브 채널 ‘연기덕후’에 공개된 ‘대치파파’ 김동석씨는 소담씨의 남편이다.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한 직장인으로 말끔한 옷차림에 정중한 말투를 가졌다. “아이와 아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동석씨는 어느 날 ‘도치도치맘’ 모임에 참석하게 된 소담씨를 대신해 제이미 라이딩에 나서게 된다. 특이하게도 이 영상에 제이미맘은 등장하지 않지만, 동석씨와의 통화를 통해 주인공급의 존재감을 가진다.
그 통화 내용에서 묘사된 소담씨는 계속 뭔가를 먹고, 백화점에서 옷을 사느라 250만원과 75만원을 결제하고, 상의도 없이 제이미 유학을 결정해버리는 다소 비호감적인 인물이다. 소담씨가 소비적이고 속물적인 인물로 그려질수록 동석씨는 ‘선량하고 불쌍한 가장’으로 포지셔닝 된다. 이런 재현은 무엇을 보여주는 걸까? 동석씨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이 영상은 제이미맘으로 대표되는 ‘대치맘’을 향한 편견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는 게 아닐까? “제이미맘 결혼 잘했네요”라는 댓글 포함, 칭찬 일색인 댓글을 보다보면 그런 의심은 더욱 짙어진다.
예능은 예능일 뿐이라지만, 제이미맘은 생각보다 복잡한 텍스트다. 우선 선망과 욕망의 공간으로서 ‘대치동’과 숭배와 멸시의 대상으로서의 ‘맘’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의미에서 한국 사회의 내면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낸 콘텐츠가 됐다. 그리고 여성을 혐오하는 오래된 문화가 이 영상을 통해 반복 재생됐다. 이런 문화는 제이미맘을 소비하는 대중을 통해 더 재생산된다. 평소 갖고 있던 현실 속의 ‘대치맘’들을 향한 편견과 멸시의 감정을 제이미맘을 기회 삼아 쏟아낸 대중은 한가인에게 달려가 충고를 가장한 악플을 쏟아내고, 중고거래 사이트에 매물로 나온 특정 브랜드 패딩과 가방이 제이미맘에게 ‘긁힌’ 여성들의 것이라 속단하며 조롱한다.
여성을 손쉽게 ‘문제적 존재’로 낙인찍어 멸시와 혐오의 대상으로 삼아온 유구한 역사가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화 속에서 ‘○○녀’가 탄생했고, 복부인-돼지엄마-대치맘의 계보가 이어져왔다. 어쩌면 제이미맘이 ‘긁은’ 것은 대치맘이 아니라, 여성을 혐오하는 한국 사회 문화 자체 아닐까?
출처: 한겨례21, 2025.03.08 ‘"제이미맘’은 무엇을 긁었나"
오수경 자유기고가·‘드라마의 말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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